사람은 지구상에서 가장 영특한 존재로 ‘희로애락’의 4단계를 거쳐 능력 있고 성숙하게 살아온 통솔자가 바로 인간이다. 사람의 온갖 감정을 이루는 ‘희로애락’은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인간이여, 너는 미소와 눈물 사이를 왕복하는 시계추에 불과하다. 울음도 웃음도 애욕(욕망)도 길지는 않다. 한 번 죽음의 문을 지나면, 그것들은 벌써 우리에게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라 했다. 기쁨이란 마음이 즐겁고, 반가운 기분이 기꺼운 상태이다. 마음의 기쁨은 사람에게 생기를 주고, 명랑하고 활발한 기세는 그의 수명을 연장 시킨다. 기쁨이 짧다면 슬픔도 길지는 못할 것이다. 한 번의 기쁨에 천 개의 고통이 달려 있다는 것은, 기쁨 하나가 수많은 고통을 이겨낸다는 뜻이다. 기쁨은 인생의 요소이며, 인생의 욕구이며, 인생의 힘이며, 가치이다. 인간은 누구나 기쁨에 대한 욕구를 갖고, 기쁨을 요구할 권리를 갖고 있다.기쁨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된다는 목표에 점차 접근해 가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스 격언에, 어떠한 기쁨도 등에는 고통을 업고 있다. 훌륭한 사람은 괴로움을 극복하고 기쁨을 획득한다고 한다. 기쁨이 없는 인생은 기름이 없는 등불이다. 노여움(노염)은, 섭섭하고 분하여 몹시 성을 내는 분노이다. 분하다는 분노는 당하지 않을 일을 겪어서 억울하고 원통한 것이다. ‘잠언서’에, 화(火)를 잘 내면 말썽을 일으키고, 골(머릿골)을 잘 내면 실수가 많다고 한다. 화(분노)는 몹시 언짢거나 못마땅하여 나는 성(성깔)이고, 골은 무엇이 비위에 거슬리거나 하여 벌컥 내는 성, 즉 노여움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함부로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은 용사(용병)보다 낫고, 제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성곽)을 탈취하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 분노는 기묘한 용법을 가진 무기다. 분노의 무기는 인간을 사용한다. ‘탈무드’에 현자도 화를 내면 현명함을 잃는다. 공자님의 어록에, 남 듣기 싫은 성난 말하지 말라. 남도 그렇게 너에게 대답할 것이다. 악(惡)이 가면, 화는 돌아오니, 욕심이 오고, 가고, 매질이 가고 온다. 맛있는 음식은 저녁에 먹고, 화가 날 말은 내일로 미루어라. 말은 분노를 고치는 의사이며, 분노는 전쟁의 아들이라 한다. 노기(성난 얼굴빛)를 참아낼 수 있는 자는 완강한 적(원수)도 이겨낸다.슬픔은 불행을 만나거나 몹시 외롭기나 하여, 울고 싶어지도록 마음이 아픈 상태이다. 모든 인간에게 있어 공통되는 온갖 말은 화 (재앙이나 위해) 중에 가장 큰 것은 슬픔이다. 슬픔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덜 수 있는 슬픔이고, 또 하나는 덜 수 없는 슬픔으로 우유부단(결단을 내리지 못함)에는 슬픔이 낀다고 한다. 슬픔은 남에게 터놓고 이야기함으로써 완전히 가시지는 않을망정 누그러질 수는 있다는 것이다. 슬픔의 유일한 치료법은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하는 것이다. 영국의 시인이요, 소설가인 와일드는, 환락과 웃음의 그늘에는 거칠고 단단하고 냉혹한 기분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슬픔 뒤에는 언제나 슬픔이 있을 뿐이다. 고통은 쾌락과는 달라서 가면(위장)은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즐거움은 마음이 흐뭇하고 기쁜 기색으로, 누구나 누리고 싶은 감정이다. 성경 말씀에, 마음이 즐거우면, 앓던 병도 낫고, 속에 걱정이 있으면 뼈도 마른다고 한다. 고통은 짧고, 즐거움은 영원하다는 말도 있다. 진심으로 즐거웠을 때 우리는 마음의 영양을 얻는다. 인생의 즐거움은 인생을 사는 인간에게 달려있다. 하는 일이나 장소에 좌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추녀 끝에 달린 풍경도 바람이 불어야 소리가 난다. 인생도 평온 무사하다면 즐거움을 모른다. 곤란한 일이 있으면 즐거움을 알게 된다. 태산을 넘어야 평지를 보듯이, 고생 끝에 낙(즐거움)이 있다. 영국 속담에, 즐거움과 슬픔은 이웃사촌이라고 했고, 즐거움은 비치는 관경의 모습이 아니라 착하고 진실되게 사는 자의 마음속에 있다. 슬픔은 저절로 해결이 된다. 그러나 기쁨의 진가를 찾으려면 함께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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