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다닐때였다. 써클(지금의 대학 동아리) 친구 중 무역학과에 다니던 한 친구는 유난히 사람들을 몰고 다녔다. 남자친구라 그런지 특히 여자애들이 주변에 끊이지 않았다.
뭐 딱히 미모가 출중한 스타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학구파의 지적인 용모도 아니었다. 다소 시크하고 껄렁하게 대충 차려 입은 채 기타 하나를 메고 다녔던 것이 특이점이라면 특이점이었다. 그런 그는 기타를 자유자재로 연주했고 무엇보다 넉살 좋은 유머로 좌중을 압도했다. 자연스럽고 세련된 화법의 유머 코드에 여자애들은 자지러졌고 늘 사람들의 중심에 있었다. 나도 은근히 그를 좋아했고 특히 그 친구의 개그에 무척 매료됐던 기억이 난다. 지금까지도 나는 늘 ‘웃기고 유쾌한’ 이들을 좋아했다. 사이다 같이 톡 쏘고 커피의 잔향 같이 달콤한 여운을 주는 녹진한 유쾌함을 삶을 영위하는 우선 가치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인생의 숱하고도 얄궂은 고비들에서 그것을 넘어 매일 기적을 쓰고 있는 장한 우리들에겐 아마도 어떤 삶의 덕목보다 필요한 장치인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삶의 질곡에도 아름답고 희망적인 삶을 찬양한 노래가 많다. 그중에서도 영국 락밴드 Coldplay(콜드플레이)의 레전드 떼창 유발곡이자 명실상부한 대표곡 ‘Viva la vida(2008년 발매)’는 스페인어로 ‘인생이여 만세’, ‘인생은 계속된다’의 희망적인 의미를 지닌다.이 노래 제목인 ‘Viva la vida’는 1954년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유작에 새겨진 문구로, 잘 익은 수박들의 붉은 단면을 통해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삶을 승화시켰다는 해석을 얻고 있는 작품이다. 콜드플레이는 이 그림에 적힌 문구를 보고 감명을 받아 제목으로 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프리다 칼로는 이 그림을 완성하고 8일 후 사망했다고 하니 칼로의 삶은 끝까지 아이러니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혼과 육체를 가진 주인공 조르바는 작가 버질에게 ‘원고 나부랭이를 팽개치고 행동하는 인생으로 뛰어들 구실’을 찾게 해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모른다. 삶의 매 순간 빛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작은 행복을 신중하게 얼싸안고 보듬으며 전진하는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그런 면에서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엔딩 대사는 지금도 인생의 작은 지표로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여기서 다시 니체가 말한 명구를 되새겨본다. 그는 ‘생을 깊이 들여다보면, 고뇌까지도 그만큼 깊이 공격적으로 들여다보게 마련이며 그래서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라고 외친다. 저마다의 지난하지만 존귀한 삶을 그는 이렇게 웅변했다. 연일 한증막같은 폭염에 살림살이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치열하고 때론 비정하기까지 한 삶의 한복판에서 그럼에도, 삶은 아름답고 유쾌하다고 만세를 불러야 할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다시 끊임없이 전진하는 삶의 원동력은 우리 주변의 유쾌하고 긍정적인 사람들에게서, 작은 자연의 호흡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인생이여 만세, Viva la vi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