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80년대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을 첫 소절로 하는 노래 ‘아침 이슬’을 모르는 이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노래 ‘아침 이슬’을 만든 작곡자 김민기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6.25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가난한 나라가 5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안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고 이젠 선진국 대열에 든 것을 세계는 ‘유례가 없는, 경이로운’이란 표현으로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햇살이 환할수록 그 그늘은 더 짙듯이 우리의 고도성장에도 어두운 이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우리보다 앞선 나라들과의 수출 경쟁력을 위해 노동의 강도에 못 미치는 낮은 임금, 노동자 권리의 유보와 희생이 강요되었습니다. 더구나 70년대에 들면서 정권은 ‘유신(維新)-낡은 것을 새로운 것으로 바꿈-’을 빌미로 국민의 권리와 자유는 기한 없이 유보되었습니다.    그렇듯 암울하고 엄혹한 시기였던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경제성장을 빌미로 유보되어 온 민주주의를 되찾고자 하는 대학가의 시위 현장에 ‘아침 이슬’은 빠지지 않는 노래였습니다. 김민기가 1971년에 만든 이 노래는 정부가 1973년에는 소위 건전가요로 정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1975년에는 오히려 금지곡이 됩니다. 정권은 이 노래의 노랫말을 자의적으로 뜯어 해석해 불온한 의도를 담았다고 엮어 금지곡으로 지정했지만 사회 정의를 외치는 시위 현장에서 ‘아침 이슬’은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많이 불리고 더 멀리 퍼졌습니다.   참, 잘 알려진 노래가 하나 더 있군요. 90년대 말, 우리나라는 IMF의 구제 금융의 도움을 받아 경제 위기를 넘겼지만 기업들의 줄도산과 정리 해고로 실업자가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그런 시기에 박세리 선수가 맨발 투혼으로 이룬 LPGA대회 우승 장면은 우울한 우리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 장면은 대한민국 50주년 기념 공익광고의 콘텐츠로 쓰이고 배경음악으로 쓰인 ‘상록수’도 널리 알려지게 되고 TV 프로그램에서 다른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종종 접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이 노래도 그가 만든 ‘아침 이슬’, ‘늙은 군인의 노래’와 함께 불온한 노래로 몰려 금지곡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던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 김민기는 많은 고초를 겪습니다. 항상 사찰기관의 눈이 따라다녀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 중에도 한국도시산업선교회와 함께 산업화의 가장 아랫자리에서 수출과 성장을 이끄는 주역이지만 마땅한 권리나 대우를 받지 못하던 공장 노동자들의 애환을 담은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만들어 암암리에 공연합니다. 극중에서 노동자들이 부르는 노래 ‘이 세상 어딘가에’는 가난과 공적인 폭력을 겪는 어두운 현실을 넘어 꿈과 자유를 가질 수 있는 밝은 곳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어 작곡자 김민기의 눈이 어디를 지향하고 있었는지 보여줍니다.   그가 사비를 털어 대학로에 만든 공연장 ‘학전’은 소극장문화가 보편화 되는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학전 무대에서 첫 공연을 올린 뮤지컬 ‘지하철1호선’은 이후 4,000회 넘는 공연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독일 뮤지컬 를 김민기가 번안하여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는 인간군상의 노래와 대사로 시대상을 표현한 이 작품은 이후 원작자들도 김민기 버전의 ‘지하철1호선’의 독자적 작품성을 인정해 2000년 이후로 저작권료를 받지 않기로 하거니와 이 뮤지컬은 독일로 역수출되기도 했습니다. ‘지하철1호선’ 이후 그는 다시 아동 뮤지컬로 관심의 방향을 돌립니다. 스스로의 표현으로 ‘돈 안 되는 일을 하려고’ 라지만 그가 ‘어린이’란 이름의 미래에 희망을 둔 것이라고 들립니다. 그러나 학전은 그의 지병과 운영의 어려움으로 2023년에 문을 닫았습니다. 흙먼지 이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김민기의 노래를 부르며 시대의 공기를 함께 호흡하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죽음을 가슴깊이 애도합니다. 그의 노래 ‘봉우리’ 가사의 한 부분도 소개해 드리면서.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김민기의 노래 ‘봉우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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