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을 오른 적이 있다. 2월 하순쯤으로 기억 된다. 칼 날 같은 매서운 추위가 도사리고 있는 2월의 어느 날이다. 늦은 오후였다. 눈 쌓인 골짜기를 지나는데, 얼음을 헤집고 피어난 노란 꽃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꽃을 보는 순간 경이로움이 일었다. 눈을 안고 피어 있으니, 그냥 눈꽃이라 부를까 한다. 훗날 알아보니 꽃 이름이 얼음색이 꽃이었다. 밤새 내린 눈을 솜이불처럼 뒤집어 쓴 채 은백색의 별유천지를 이룬 대자연을 홀로 소유하며, 또한 눈꽃에 홀렸던 산행이라 세월이 흘렀건만 잊히지 않는다. 추억은 아름다운 것. 백설을 안고 홀로 피어난 그날의 얼음색이꽃을 반추하노라니, 딸아이가 전해주는 마음씨 착한 청년의 모습이 그 꽃 위로 오버랩 된다. 따지고 보면 그 청년의 처지는 너무나도 그 꽃을 닮았기에 차라리 연민의 정을 넘어 애정이 돋는다. 지난날 대학생인 막내딸이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 대형 매장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함께 일하는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동정어린 말을 잊지 않는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 의해 버려진 그 청년은 어느 교회 목사님의 헌신적 뒷바라지로 잔뼈를 키우고, 고등학교까지 졸업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목사가 세상을 뜨자 교회를 뛰쳐나와 홀로 힘든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산 단다. 부모가 생존해 있어도 세상의 험한 파고를 넘기기 어려울 텐데…. 오죽하면 인생을 고해라고 비유했을까? 주위에 한 점 혈육 없이 홀로 세상 풍파를 이겨야할 그 청년을 떠올리려니, 측은지심이 인다. 무엇으로든 도울 수 있다면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다. 이웃과의 단절은 죽음보다 두렵다. 그러기에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오죽하면 셋만 있어도 모임 짝궁이 이뤄질까. 인간은 단체적 소속감을 갖게 한다. 고독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함이다. 어느 지인은 모임이 스무 개가 넘는다고 했다. 하루에 한번 꼴로 모임에 참석하느라 정신이 없다며 푸념까지 늘어놓았다. 만남은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되고 또 끝이 나는 법이다. 인생이 연극인 것은 상생을 바탕으로 인간이 존재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때 자아를 상실한 채 타성에 젖어 사는 현대인의 공허함을 경계하는 한 편의 수필이 있어 일독을 권한다.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있기에 우를 범할까 저어하여 작가의 약력을 짚어둔다. 전(前) 대전 신일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한 박동규 수필가의 수필집『당신이 고독할 때』에 수록된「당신이 고독 할 때」란 제호의 글이다. 박동규 수필가는 삶에 쫓겨 사노라 각박해진 현대인들의 삶을 성찰의 기회로 삼자고 선창하고 있다. 작가는 역설적으로 “당신이 고독할 때 아름답다.”라고 했다. 이 표현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람을 만나 서로 웃고, 떠들고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때론 홀로 남아 자신의 영혼을 깊이 응시하며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시간도 필요함을 강조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    “당신은 모든 허울을 벗고 티 없이 맑은 제 모습으로 돌아와 있기 때문이다.”라고 결론지었다. 이해타산을 벗어나지 못하는 진정성 없는 인간관계의 괴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담겨있다. 또 “우리가 외워대는 대사는 얼마나 불완전한 것이던가. 당신이 듣고 있는 당신의 입으로부터 표출되는 말이 표현코자 하는 주제와 연출하고자 하는 의도와 꼭 맞아 떨어지는 때가 있던가.”라고 강조한다. 허울에 익숙한 채 허상의 삶을 누리고 있는 현대인에 대한 경고다. 그동안 겹겹이 끼워 입은 허울의 옷을 벗어던지자. 그리고 마음의 거울에 스스로의 모습을 비쳐보자. 물욕에 젖은 모습을 비춰보기 위해서 오늘도 세진(世塵)으로 얼룩진 마음의 거울을 닦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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