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내리는 후텁지근한 날씨이련만, 수십 여 년 전 이 맘 때 신바람이 났던 어머니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비록 서민 아파트지만 자식으로부터 받은 선물이기에 당신의 기분은 최고였나 보다. 친구 분들에게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눈치다. 집들이 계획으로 이사 전부터 마음이 들떴던 어머니였다.   나는 어머니의 뜻을 새겨 방앗간에 떡을 맞추고, 술안주와 음식을 준비하여 조촐한 집들이를 해 드렸다. 어머니의 구닥다리 살림으로 채워진 비좁은 아파트 거실엔 이날따라 노인이 여러분 찾아와 자리를 함께 했다. 수육과 떡, 탕수육과 잡채, 삼계탕을 끓여내는 동안 노친들은 밭두렁의 개나리보다 더 풍성한 이야기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딸 자랑, 아들 자랑, 그리고 며느리에 대한 서운함, 이런 것들이 공통된 화제 거리었다. 주로 자식과 떨어져 홀로 사는 독거노인들이니 별다른 이야깃거리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차차 언성이 좀 높아지고 이야기의 주 주제가 며느리 쪽으로 기울어 갔다. 아들은 용돈을 듬뿍 주고 싶어 하는데, 중간에서 며느리가 훼방을 놔 부득이 폐지를 모아 생활에 보탠다는 할머니도 있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놀랍게도 사회적 신분이 꽤나 높은 아들을 두고 있었다. 그 할머니의 이야기는 나의 입맛을 씁쓸하게 했다. 유교의 가부장제도 사상이 몰고 온 남아선호사상, 하여 어머니 세대만 하여도 여인들은 아들 낳기에 생명을 걸었던 게 아닌가. 그러나 세태는 바뀌었다.   집안이 흥하려면 며느리가 잘 들어와야 한다는 말이 있다. 고금을 통하여 이 말은 진리인 듯싶다. 이 세상 며느리를 벗어나는 딸은 없다. 누에가 껍질을 세 번 벗고 집을 짓듯이, 딸이 며느리가 되고, 그 며느리가 늙어서 시어머니가 된다. 남성이 여성으로, 여성이 남성으로 성(姓)전환 했다는 소리는 들을 수 있어도, 이 세상에 아들을 둔 이상 시어머니 비켜갈 여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삶의 순리이고,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다. 부모를 모시는 일은 선택의 조건이 아니다.    시부모를 모시는 일도 마찬가지다. 역지사지란 말이 있다. 서로의 처지를 한 번만이라도 바꾸어 생각해 보자. 훗날 자신이 늙고 병들었을 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부모를 직행 시킨다면 헌신과 희생으로 어찌 자식을 양육하랴. 그럼에도 현실은 자식 대신 요양원이나 요양 병원이 그 효를 담당하는 세태다.   그날 어머니의 집에 모인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큰 교훈을 얻었었다. 아울러 당시 작가 고도원 지음『부모님 살아계실 때 꼭 해드려야 할 45가지』에 수록된 내용 중「홍어 반 마리- 마음이 들어있는 건강식품 챙겨드리기」가 더욱 새롭게 가슴을 울렸다.   6・25전쟁의 화마 속에 시달리며 참상을 겪었던 동시대 민초들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가난이었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생명을 이어가던 소년은 아버지가 없는 집안의 가장 노릇을 했었나보다. 병석에 누워 계신 어머니가 홍어가 먹고 싶다고 하였으나, 그것을 사드릴 형편이 못되어 날마다 어물전 앞만 서성인다.    며칠 째 자신의 가게 앞을 떠날 줄 모르는 소년을 이상히 여긴 어물전 주인은 소년에게 그 연유를 묻는다. 그러자 소년은 병석에 계신 어머니를 위해 홍어를 사드리고 싶으나 돈이 없다고 실토했다. 그 말은 들은 어물전 주인은 홍어의 반을 선뜻 잘라 소년에게 건네주며 이다음에 돈 많이 벌면 갚으라고 말한다. 그것을 손에 쥔 소년은 한걸음에 달려가 어머니에게 삶아 드린다. 그러자, 어머닌 병석에서 일어났다는 이야기다. 이 소년은 ‘선생이 되어라’던 어머니의 유언을 지켜 훗날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에게 홍어는 생명이며, 희망이며, 어머니였던 것이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는 성공한다. 그것은 하늘이 내린 진리이다.’ 스스로 실천하고, 스스로 얻은 어느 교수의 경험담이기에 이 글이 더욱 감명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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