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이 시작할 때 어느 기상학자가 예측하여 말하기를 겪어온 여름 중 이번 여름이 가장 더울 것이라더니 과연 그러하더군요. 한반도 상공에 더운 기단이 버티고 있어 태풍조차 오지 못한다고 하더니 우리나라에 상륙했던 9호 태풍 ‘종다리’도 큰 세력을 미치지 못하고 가마솥 속 같은 무더위만 남기고 소멸했습니다.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열대야가 잠을 이룰 수 없도록 하니 더위가 범처럼 무서울 정도입니다. 서울의 열대야 계속되는 기간이 기상 관측 이래 최장기간이라고 하는 언론 보도가 있는 데다가 하루 종일 냉방기를 켜두고 있자니 이후 날아올 이번 달 전기료 고지서가 벌써 무서워진다는 지인의 말에 덩달아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의 어릴 적에도 여름이야 당연히 더웠습니다만 그래도 그때는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낭만도 있어서 더위를 잠시나마 잊기도 했습니다. 지금에야 철도 없이 나오는 수박, 참외지만 그때는 여름철이라야 맛볼 수 있는 서민들의 대표적 과일이었기에 수박 한 덩이를 사다 두레박에 달아 우물 안 깊숙이 내려 차게 한 수박을 저녁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쪼개어 먹던 것이 더위보다 먼저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초복날 커다란 함지에 펌프로 퍼 올린 써늘한 지하수를 가득 채워 거기에 노란 참외를 둥둥 띄워놓고 오며가며 건져내어 와삭와삭 씹어 먹던 기억도 새록새록 납니다.    찬밥은 바구니 안에 넣어 바람이 잘 통하는 마루 위 들보에 달아두었다가 점심 때 찬 물에 말아 된장에 찍은 풋고추나 밥 위에 얹어 찐 굴비를 찢어서 얹어 먹던 맛은 지금도 그립습니다. 해가 지면 낮 동안의 더위도 같이 이울어서 마당에 내놓은 평상에 두리반을 펴고 온 식구가 얼음 띄운 가지 냉국을 반찬으로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밥상을 거두고 난 자리에 그대로 벌렁 누우면 별이 총총한 밤하늘이 쏟아질듯 하였지요. 밤하늘을 길게 가르는 은하수가 있고 백조자리와 거문고자리에서 견우와 직녀를 찾고, 밤이 점점 깊어지면 남쪽하늘에 전갈자리와 사냥꾼 오리온자리를 찾았지요. 아버지가 평상 주위에 마르지 않은 쑥과 온갖 풀로 모깃불을 피우면 어머니는 우리들 위로 커다란 부채를 흔들어 모기를 쫓아주었습니다. 동네의 집집마다에 에어컨은커녕 냉장고도 없었지만 그런 형편은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집들도 비슷하기에 가난이 그다지 남루하지도 않았습니다.   과거에 비해 더위가 해가 갈수록 강도가 심해집니다. 매년 온열질환자가 증가하고 온열질환으로 사망하는 이의 수도 해마다 늘어갑니다. 올해만 해도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이 서른 명을 넘었다고 하더군요. 콘크리트로 지어진 도시의 공기는 집집마다 틀어놓은 냉방기의 열풍으로 데워져 냉방기기 없이 선풍기 하나로 더위를 견디는 소외 계층의 여름을 더 뜨겁게 합니다. 폭염 속에서 학교 급식실의 에어컨을 설치하던 이십대 젊은 기사가 열사병 증상으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했습니다.    쓰러진 젊은이를 업체 측에서 한 시간이나 방치했다는 보도에 분노보다 차라리 슬픔을 느끼게 합니다. 생명이 위기에 처해도 그날 해야 할 작업량이 우선되어 쓰러진 환자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는 업체측의 변명에서 물질주의의 민낯을 봅니다. 어린 시절 여름의 기억과 다르게 성인이 되어 겪는 여름은 무덥고 힘들고 무자비하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24절기 중 열네 번 째 절기인 처서(處暑)가 며칠 전에 지났습니다. 아직도 더위는 기승을 부리지만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도 삐뚤어진다’는 옛말도 있지 않습니까? 왜냐면 ‘처서’는 ‘더위가 그칠 때’가 되었다는 의미니까요. 처서 이전에 열세 번째 절기인 ‘입추(立秋)’도 하마 지났으니 늦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이미 가을은 시작되었습니다. 매미 소리가 요란하고 더위는 마냥 머물러 있을 것처럼 기세를 떨치지만 밤중에 들리는 풀벌레 소리는 계절이 갈마드는 소리입니다. 부자에게든 빈자에게든 계절이 바뀌는 것은 공평합니다. 조선 후기에 정학유가 지은 가사 ‘농가월령가’의 칠월령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칠월이라 맹추(孟秋)되니 입추 처서 절기로다./ 화성(火星)은 서류(西流)하고 미성(尾星)은 중천이라. 늦더위 있다한들 절서(節序)야 속일소냐. / 비 밑도 가볍고 바람 끝도 다르도다.’ 들판의 논마다 벼이삭이 패서 가을 햇살을 기다립니다. 조물주의 설계가 참으로 헌사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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