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설가가 말하되 비밀이 없는 자는 가난한 자라고 했다. 그러나 비밀은 탄로가 나기에 존재하는 게 아닌가 싶다. 세상에서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은 말이다. 말이란 입을 건널 때마다 불어나는 속성을 지녔다. 우리나라 고대소설이 패관 문학으로부터 시작된 것도 이 말의 속성 때문인 듯하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진다’라는 속담은 예나 지금이나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   남을 칭찬해보라. 그 칭찬은 반드시 칭찬이란 꼬리를 달고 나에게로 되돌아온다. 반대로 남을 험담해보라. 그 욕은 반드시 새끼까지 잔뜩 거느리고, 나에게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이렇듯 말은 고지식하여 그 원리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평소 안면이 있는 어느 여인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십 수 년 넘게 사귀던 친구가 아무런 이해 관계 없이 나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더란다. 아마도 질투심에 눈이 멀어 그런 것 같다는 주석까지 달아주며.    그러나 입에 올릴 가치조차 없는 근거 없는 황당한 내용이 전부라서 그날은 무심히 지나쳤다. 아니 혹시 그릇된 이간질이 아닐까 싶어 곧이듣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한지 모른다. 그런데 그녀가 나에게 전해준 똑같은 내용의 말을 어느 지인으로부터 또 들었다. 아마도 이 지인 역시, 나에게 황당한 내용을 전해준 그 여인으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모양이다. 이쯤이면 싸움을 붙이는 고자질치고는 최상급에 해당된다.   기회가 되면 그녀를 불러 사실을 확인해 볼 요량이다. 무슨 억하심정이 있기에 남의 인격과 명예에 손상을 끼칠 수 있는 말을 발설하고 다녔는가를 따져볼 작정이다.   내가 이런 마음을 굳힌 것은 다음의 사실이 추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십 수 년을 함께 정을 나눴다는 여인의 말을 빌어보면, 그녀는 앉았다하면 남의 험담을 들추는 것은 물론, 친한 친구인 자신까지 교묘한 말솜씨로 항상 곤경에 빠뜨리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어찌 막역지우의 흉을 덮어주지는 못할망정 세 치 혀로 남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말은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는 법. 세상을 살아가노라니 이 말의 의미가 새삼 새겨진다.   SNS와 스마트폰 메신저 발달로 괴담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세상이 되었다. 언젠가 사회전반에 퍼진 괴담은 우리들을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넣기도 했었다. 육아도우미가 장기밀매를 위해 아이 두 명을 납치했다는 내용의 ‘육아 도우미 괴담’. 낯선 사람이 동생을 칼로 찔렀다는 ‘연신 내 괴담’. 인신매매된 여고생이 시체로 발견 됐다는 ‘순천 괴담’. 할머니와 남성이 짜고 인신매매 한다는 ‘대전 괴담’ 등은 전혀 근거 없는 내용이란다. 근거 없는 괴담이라 할지라도 참으로 끔찍한 이야기가 아닌가. 괴담은 사회적 불안을 먹고 자란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밝은 사회 따듯한 세상, 그리고 서로 믿고 살 수 있는 그런 날은 정녕 올 수 없는 것인가. 이백은 그의 시「산중문답」에서 ‘별유천지 비인간’이라 했다. 참으로 무더운 여름이었다. 그러나 이제 처서를 넘겼으니 계절은 속절없이 가을이다.   그러나 우리들에겐 ‘9월의 노래’가 있다.    9월이 오는 소리 다시 들으면/ 꽃잎이 피는 소리 꽃잎이 지는 소리/ 가로수에 나무잎은 무성해도/ 우리들의 마음엔 낙엽은 지고/ 쓸쓸한 거리를 지나노라면/ 어데선가 부르는 듯 당신 생각뿐/ 9월이 오는 소리 다시 들으면/ 사랑이 오는 소리 사랑이 가는 소리/ 남겨준 한마디가 또다시 생각나/ 그리움에 젖어도 낙엽은 지고/ 사랑을 할 때면 그 누구라도/ 쓸쓸한 거리에서 만나고 싶은 것 낙엽이 꽃처럼 지는 이 가을날, 길거리서 만나고 싶은 사람은 괴담의 주인공 아닌 이백이나 도연명이었으면 좋겠다. 이 가을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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