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문명 발달이 인류에게 이익만 제공하는 것은 아닌 듯싶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사용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social Network service) 의 혁명을 불러왔다. 예전과 달리 사람들은 이를 통하여 더 많은 지인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있다. 하여, 눈만 뜨면 수많은 언어와 글자가 일상을 지배한다.
 
십 수 년 전 일이다. 친정어머니께 아파트 한 채를 사드릴 때 일이다. 여기서 겪은 일화다. 약간 대출금이 필요해서, 그 집에 살던 세입자 주민등록과 전출을 확인해 달라는 부탁을 매도자인 집주인에게 했다. 그런데 갑자기 매도자는 자기와 무관한 말을 꺼낸다며 막무가내다. 대출이 이뤄지지 않으면 아파트 잔금이 미뤄진다고 사정하자, 그녀는 한 술 더 떠 그것은 본인 사정이지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말까지 쏟아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40대 초반이었다. 이를테면 가장 현대적인 사고방식대로 살아간다는 세대다.
 
간추려 말하면, 남의 입장은 전혀 배려할 줄 모르는 꽉 막힌 일명 벽창호 여인이었다. 내가 부탁한 청은 암묵 시 되었던 내용이다. 또한 그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날 장마 비가 쏟아지는 우산 속의 통화라, 상대방 얼굴 표정은 어떠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필자는 저쪽에서 잘 들리도록 짐짓 음성을 좀 높혔다. 이게 또 화근이었다. 그녀에게 꼬투리를 잡을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왜 고성이냐?”고 따지고 덤볐다.
상식 밖의 그녀 억지에 “세상을 살다보면 말도 보고 소도 본다.”라는 어머니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날 상황에 딱 들어맞는 나에겐 더 없이 좋은 지난날 어머니 훈육이었다.
 
세상엔 저마다 철학과 사상을 지닌 사람들이 어울려서 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원칙과 정도는 분명코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법칙 속엔 이웃에 대한 배려와 인정도 내재돼 있다. 이렇듯 타인이 지닌 어려움이나 입장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은 어쩌면 이기심이 강하다는 평가를 할 수 밖에 없다.
 
얼마 전 104세 장수를 누리는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전해준 말이 참으로 인상 깊다. 그분 장수 비결 중 첫째로 꼽는 게 이기적인 사람을 경계 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유는 이런 사람은 자기밖에 몰라서 은연중 속상한 일과 스트레스만 안겨주기 때문 일 것이다. 그는 어느 신문사 인터뷰에서 "이기주의자라는 판단이 확실히 선다면 안 만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내 힘으로는 바꿀 수 없다." 라고 그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맞는 말이다. 이기적인 사람은 냉랭하고 종잇장처럼 얄팍하여 타인에게 마음을 베풀 줄 모른다. 이런 자와는 친분을 쌓아봤자 오히려 상처와 스트레스만 잔뜩 받아 득보다 실이 클 뿐이다.
 
사람은 사람한테서 배운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과 관계를 맺다보면 그야말로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 이기심에 물든다고나 할까. 어디 이뿐인가. 김형석 교수님 말씀처럼 친분을 나누는 기쁨보다 무엇으로든 고통만 안겨 줄 뿐이다.
 
어려서 어머니는 타인을 위하는 게 곧 자신을 위하는 일이라고 했다. 늘 타인이 겪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따뜻한 정을 베푸는 일이야말로 사람다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어머니 말씀 덕분인지 누군가와 친분을 맺게 되면 상대방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나? 늘 이런 고심부터 하는 게 습관화 됐다.
오늘도 가을을 재촉하는 찬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이렇듯 비가 내리는 날에는 지난날 아파트를 매수하면서 전화로 실랑이 하던 그 여인이 생각나곤 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마음이 우울해 진다고 했다. 그 여인에겐 비 오는 날의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아니면 우울증 환자이거나, 아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사는 여인이거나. 아무튼 내가 무슨 정신과 의사는 아니지만 그 당시 그녀 언행으로 미뤄봐 정신병 증세에 시달리는 게 분명했다.
  노래는 인류 공통어라고 했다. 이렇듯 비오는 날 딱 어울리는 노래가 있다. ‘그때 그 사람’이다.
  =비가 오면 생각 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사랑의 괴로움을 몰래 감추고/ 떠난 사람 못 잊어서 울던 그 사람/ 그 어느 날 차안에서 내게 물었지/ 세상에서 제일 슬픈게 뭐냐고/ 사랑보다 더 슬픈 건 /정이라며 고개를 떨구던 그때 그 사람=’ <생략>
  최소한의 어려움을 부탁한 사람에게 무안이란 선물을 안겨주던 그 여인, 알고 보니 지인 이웃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또 평소 아파트 층간 소음 자제를 부탁한 이웃에게 인사도 하지 말라고 자녀들을 교육 시킨다는 몰상식한 여인임도 알게 됐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교육자라는 사실이었다.
 
세상은 분명코 상식과 정의가 존재하기에 그 테두리 속에서 우리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타인에게 베풀 도리와 의무를 거부하거나 외면한다면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 제멋대로이고 이기적인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그 누구도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 아니던가.
이로 보아 문명이 보낸 이기가 인류에게 행복만 주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러고 보니 그날 핸드폰이 없었더라면 서로 간에 얼굴 붉힐 일이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