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개명 신청 과정, 개명하는 이유를 적어보았다. 나처럼 이름을 직접 짓기도 하지만 작명소 등에서 받는 경우가 더 많다. 작명가들은 무엇을 중요하게 볼까.‘상겸’ ‘상경’ 중 후배가 선택한 것은?가장 중시하는 건 한자 획수다. 우리나라 공식 문자는 한글이지만 여전히 한자에 기반해 이름을 짓는다. 그래서 복을 받는 한자 획수(또는 뜻)인지가 중요하게 취급된다. 성과 이름의 한자 획수를 따져 길흉 분석하는 걸 수리 오행(數理五行)이라 한다. 수(數)가 갖는 오행이란 뜻. 가령 1과 2는 목(木), 3과 4는 화(火)에 해당한다. (1과 6이 목이란 썰도 있다.)   한자 뜻도 획수만큼 중시한다. 뜻은 대개 자원오행(字源五行)에 따라 맞춘다. 자원오행은 글자 자체가 지닌 오행을 말한다. 한자 뜻을 살펴 사주에 없는 오행을 보충해준다. 鋆(금 윤)의 자원오행은 금(金). 사주에 금 기운이 부족한 사람의 이름에 넣으면 좋다고 한다.   그 외에 중요한 두 가지 중 하나는 한글 어감. 부르기 쉬운 이름이 좋다. 에너지가 순탄하게 흐르는 느낌을 준다. 한자의 획수/뜻이 아무리 좋아도 부르기 어렵거나 복잡한 이름은 입에 올리기 어렵다. 끝 한자가 너무 세서 욕하는 것처럼 들린다며 바꾼 사례도 있다. 이름을 들을 때마다 욕먹는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다른 하나는 이름 주인의 마음에 드는지 여부. 내 몸처럼 함께하는 이름이 쓰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복 받는 길한 이름이라는 틀에 갇혀 정작 본인 선호와 상관없이 짓곤 한다. 작명소가 강하게 추천하는 이름을 거부하기도 쉽지 않다. 사실 거부하지 못하는 건 ‘큰 복’을 받고 싶은 욕심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획수/뜻/돌림자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 오래전 대학 후배가 '상겸'으로 개명했다. 작명가가 제시한 '상겸' '상경' 중 더 큰 복을 받는다는 상겸을 선택한 것. 이렇게 이름에 좋은 걸 다 욱여넣다 보니, 한글 어감이나 본인 선호 같은 건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만다.나의 운명은 바뀌지 않았으나...개명 행위엔 운명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의 의지가 담겨 있다. 그런데 실제 현실은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본다. 어떨 때 그럴까. 첫째,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획수도 좋고 뜻도 훌륭하고 돌림자도 맞추고 등등 복 받는 이름이 되었으나... 정작 본인 마음에 차지 않는 경우다. 복 받는 이름이라니까 마지못해 수용한 탓에 다시 개명하고픈 욕구가 생길 수 있다.   둘째,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 새 이름이 자기 존재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을 '이름이 주는 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로 여기는 것.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를 넘어 자기 자신에 대한 콤플렉스가 문제 되는 경우다. 개명을 해도 두려움 열등감 같은 내면 문제는 사라지지 않다면 이 때문일 수 있다.   셋째, 원래 이름을 들킬까 봐 두려워하는 경우. 새 이름을 쓰면서도 원래 이름이 남들에게 알려질까 걱정하는 경우다. 개명 후 두 달간 내가 그랬다. 원래 이름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음에도 혼자 전전긍긍했었다. 얼굴 성형한 사람이 그전 모습을 들킬까 봐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이치.   결과적으로, 나는 운명이 바뀌었을까. 일단 이름이 맘에 드니 ‘기부니’가 좋다. 이름에 덜 매이는 것도 같다. 그전 이름으로 살았던 과거 시간과 화해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그뿐이다. 운명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그전에도 박미섬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바뀐 건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태도. 이야말로 운명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한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당신은 이름에 얽매인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이름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가? 이름을 바꾸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을 바꾸고 싶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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