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간송미술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간송미술관은 본디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자리한 국내 최초의 사립미술관인데 대구시가 2016년에 간송미술관측과 대구지역 분관에 대한 계약을 체결한 후 구체적 실행에 옮겨 지난 9월초에 정식으로 개관했습니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희귀 자료인 초간본 ‘훈민정음 해례본(안동본)’이 안동의 광산 김씨 종택 서고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간송이 당시 화폐 가치로 기와집 열 채에 해당하는 거금을 들여 구입했던 내력이 있던지라 그런 인연으로 경상도 지역의 문화중심지인 대구에 분관이 유치된 건 아닐까 하고 개인적으로 추측해 봅니다. 굵은 소나무 기둥 여럿이 떠받친 건물과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도록 조성한 박석마당이 한국적 건축물인 정자 위에 앉아 있다는 느낌이 들게도 합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간송 전형필선생은 선친에게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으로 일제 강점기에 마구잡이로 유출되던 우리 문화재를 지켜내고 유출된 것은 엄청난 금액을 치르고라도 되찾아오기까지 하며 수집하여 간송미술관의 전신인 보화각을 마련했습니다.    소장품 수로는 다른 대형 박물관에 비하면 소박한 편이지만 국보급 문화재만 해도 상당수를 보유하는 등 소장품의 질적인 수준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높습니다. 특히 ‘훈민정음 해례본’ 초간본과 ‘동국정운(東國正韻)’ 원본 등, 우리 어문학 연구에도 매우 소중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구전시회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전시되고 있어서 한글날을 앞두고 찾은 대구간송미술관은 전시실 입장에도 줄을 서서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로 사람들로 성황을 이루더군요.   현재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은 간송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안동본’과 경북 상주에서 발견되어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상주본’이 있습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란 의미인데 전 세계의 문자를 통틀어 기존의 어떤 언어에도 기대지 않고 완전히 독자적으로 창제된 귀한 문자이며 말소리가 글자를 만드는 체계의 과학성과 편리성 세계의 언어학자들로부터 극찬을 받는 우수한 문자입니다.    직접 지은 서문에서 세종은 당시 말과 글(한자)이 달라서 일반 백성들이 겪는 어려움에 연민을 표하며, 새로 만든 훈민정음으로 문자를 쉽게 깨쳐서 하고 싶은 말을 누구나 글로도 표현하는 편리함을 누리게 하려는 애민(愛民)의 마음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의 제자(製字) 원리와 과정을 설명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것은 언중(言衆)이 사용할 문자를 만든 이가 직접 해설을 달아놓은 세계 유일의 자료입니다.   이 책에는 한글 창제의 원리 외에도 훈민정음이 반포된 날짜가 뚜렷하게 표기가 되어 있어 오늘날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는 근거도 제시합니다. 한국 문화를 철저히 말살하려던 일제 강점기 말기에 이 책을 구입한 간송은 광복이 될 때까지 이 책의 존재를 철저하게 숨겼고 6.25 당시 피난을 떠날 때도 이 책을 가장 먼저 챙기며 잠을 잘 때에도 베개 밑에 두고 잘 정도로 애지중지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눈여겨 볼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글 창제 2년 후 세종의 명을 받아 집현전 학사들이 기록한 음운서인 ‘동국정운(東國正韻)’입니다. 한자에 대한 통일된 한국어 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편찬, 간행한 일종의 외래어 표기법 책이라 할 수 있는 매우 가치 있는 문화재입니다. 훈민정음 서문의 첫 구절에 한문글자 ‘中國(중국)’에 ‘듕귁’이라는 말소리를 대응한 것이 바로 동국정운식 한자 발음을 표기한 예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한국말과 당시에 사용하던 한국말이 조금 다른 모습을 알게 합니다. 교과서에 실린 동국정운으로 표기된 훈민정음 서문의 제목에 소리값 없는 ‘ㅇ’에 소리값을 넣어 ‘솅죵엉졩 훈민졍음’이라고 읽으며 깔깔대던 고등학교 시절이 문득 떠오릅니다. 우리 역사에 세종대왕이라는 성군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오늘날까지도 문자로는 한문을 사용하며 ‘말과 글이 사맛디 아니한’ 불편한 언어생활을 할 뿐 아니라, 우리만의 독자적 문화가 꽃피기도 제약이 많았을 것입니다. 아울러 간송선생 또한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엄청난 재력을 개인적 풍요와 사치와 영달을 위해서만 썼더라면 뜬구름처럼 흩어져 버리거나 천박하게 썩어가는 냄새를 풍길 수도 있었을 재물에 고상한 가치를 부여하고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세종과 간송은 든 사람, 난 사람을 넘어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는’ 사랑법을 실행한 ‘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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