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한 곳 부기와 통증 가라앉지 않아퇴원이 며칠 연기됐다는 아내의 전화 받고(며칠 전 워커 없이 걷기 시작했다고 좋아했는데)갑자기 머리에 짙은 안개 끼고 속이 울렁이고 어지럽다의자 붙들고 한참 서 있어도 어지럽다. 어쩐다?컴퓨터로!언젠가 전철에서 마음 하도 어수선해쓰다만 시 들어있는 수첩 꺼내든 적 있었지그래, 초고 시 폴더를 들쳐 보자아, 이 시는 첫 줄부터 말이 안 되네, 몇 자 손본다내친김에 초고들을 하나씩 띄운다아, 꽤 멋진 구절도 있었구나, 여기도!휴대폰 벨이 울린다, 잘 못 온 전화.전화기 놓으니 아, 어지러움 확 가셨다마음 놓기는? 시 없는 데서 어지러우면?잘 안 뵈는 시도 감춰진 시도 있겠지만이 세상에 시 없는데 어딨어! -황동규, '그래도 시詩가 있다'   세상에는 수필 같은 시가 있고 시 같은 수필도 있다. 따라서 시도 수필도 이야기다.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문학작품이고 예술작품이다. 피천득 선생님은 자신의 글이 밀도가 좀 높으면 시고, 밀도가 좀 낮은 글이면 수필이라고 했다.   며칠 전 책을 읽다가 황동규 시인의 최근 시, 한 편을 보았다. 나는 이 시를 수필 같은 시로 읽었다. 짧게 쓴 수필 같은 이야기 시다! 솔직한 자신의 구체적 체험 이야기다. 삶이 온통 어지럽고 어수선할 때 우리가 의지할 곳이 어디인가? 등산인가, 취미생활인가, 여행인가, 술인가? 시인은 자신의 요즈음 상황을 담담한 마음으로 수필 쓰듯 써내려 간다. 진솔한 마음이 담긴 글로. 행으로 리듬을 살리면서 수술한 아내의 퇴원을 기다리다 퇴원이 미루어진다는 얘기를 듣자 정신이 멍해지고 자신에게 닥쳐온 어지러움을 얘기 한다. 이러한 일련의 심적인 흐름을 시로 형상화 하여 수필처럼 구성했다. 정신을 온통 흐리게 만들어도 무언가의 도움을 받아 빠져나올 수만 있다면 그것은 살아 볼만한 삶이 아닌가 하고 반문한다. 도움을 주는 그것이 자신에겐 시라고! 위로하며. '언젠가 전철에서 마음 하도 어수선해/ 쓰다만 시 들어 있는 수첩 꺼내 든 적 있었지/그래, 초고 시 폴더를 들쳐 보자/ 아, 이 시는 첫 줄부터 말이 안 되네, 몇 자 손본다' 시인은 행갈이를 하며 리듬을 살려 수필 쓰듯 시를 쓴다.  '잘 안 뵈는 시도 감춰진 시도 있겠지만/이 세상에 시 없는데 어딨어!' 맞다. 시는 도처에 있다. 우리를 구원하는 천사처럼.   세상이 온통 잡스럽고 어지러워도 빠져나올 수 있는 틈이나 구멍이 있다면 살아볼만한 삶이 아닌가! 그래도 아직 시인에겐 시가 있다! 수필 같은 시, 천사가 있다. 아, 가을이 멋진 수필처럼 창밖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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