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건천읍 신평리 뒷산에 올라 보면 신라시대부터 불러오던 여근곡(女根谷)이라는 지명을 가진 골짜기가 있다. 이곳은 그 생김새가 여자의 은밀한 부위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그 중심부에 있는 샘물은 가뭄과 상관없이 지금도 물이 솟아나고 있다.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는데 신라 선덕여왕의 지기삼사(知幾三事)에 관한 내용 중의 하나다. 내용인즉, 선덕여왕 5년(636) 어느 날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영묘사(靈廟寺) 앞 옥문지(玉門池)라는 연못에서 수 많은 개구리(or 두꺼비)들이 3~4일 동안 계속적으로 울어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이상하게 여겨 선덕여왕께 아뢰었는데, 왕은 곧바로 병란이 일어날 징조라 판단하고 알천(閼川)과 필탄(弼呑) 두 각간을 불러 지금 바로 2,000명의 군사를 데리고 경주 서쪽의 여근곡에 숨어있는 백제 군사들을 섬멸하라는 명을 내렸다. 
 
신라 군사들은 어명을 받들어 여근곡에 이르니 신기하게도 백제의 우소(于召) 장군이 거느린 500여 명의 군사들이 숨어있었고, 곧바로 포위하여 그들을 전멸시켰으며 뒤따라오던 후속부대 1천2백 명도 모두 물리쳤다고 한다. 구중궁궐 깊은 곳에서 적군이 숨어든 것을 알아낸 선덕여왕의 슬기로움에 놀란 신하들이 그 연유를 물어보았다. 
 
왕이 답하기를, “개구리가 성이 난 것은 군사를 뜻하고 옥문지(玉門池)의 옥문(玉門)은 여근(女根)이며, 여근은 곧 음(陰)으로 서쪽을 의미하기 때문에 서쪽에 위치한 백제 군사가 여근곡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한다. 그리고 남근(男根)이 여근(女根) 속으로 들어가면 반드시 죽기 때문에 백제 군사를 쉽게 섬멸할 줄 알았다고 하였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 내용은 음양오행의 원리를 이용하여 이러한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으며 그 당시에도 벌써 음양오행설이 보편화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선덕여왕은 이외에도 자기의 죽음을 예언하는 등 아주 지혜로운 여왕이었다고 한다.
 
이곳의 풍수 입지는 백두대간에서 동해안을 따라 뻗어 내린 낙동정맥의 줄기인 경주시 오봉산(632.9m)에서 동북방으로 하나의 지맥을 뻗어 내려오다 양쪽으로 팔을 벌리면서 여근곡의 청룡·백호를 만들었다. 산 아래에서 위쪽으로 쳐다보면 여근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청룡·백호가 멋지게 감싸 안은 듯한 모습이지만, 실제 현장에 올라 보면 혈을 맺을 수 있는 중출맥이 없고 주변 어디를 살펴보아도 뚜렷한 혈증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또한 낙동정맥의 동쪽 사면 자락이다 보니 해가 일찍 지고 골이 많아 습기가 가득하다. 
 
풍수에서는 주변의 산·수가 아무리 좋아도 혈장에 혈증이 없으면 진혈이 될 수 없다. 이것은 나의 주변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내가 건강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이치와 같다. 거기에다가 경부고속도로가 낙동정맥의 지맥을 자르면서 통과하는 근거리의 아래쪽이다 보니 이 또한 풍수적 결함이라 할 수 있다. 일반인들은 여근곡이 마치 어머니의 따뜻한 보금자리인 자궁으로 보고 대단한 길지로 생각하고 있으나 실제 그렇지는 않다. 여근곡은 선덕여왕의 지기삼사(知幾三事) 중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낸 장소일 뿐 풍수적 명당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