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적절한 띄어쓰기가 가독성 향상에 기여함을 말한 바 있다. '햇곡식'은 어떨까. 그해에 새로 난 곡식을 뜻한다. 접두사 '햇'과 어근 '곡식'이 합쳐진 복합어. ‘햇 곡식'으로 띄어 쓴다면? '햇'과 '곡식' 사이에 공백이 생긴다. 공백 없는 한 단어일 때에 비해 읽는 속도가 살짝 느려진다. 쉬지 않아도 될 곳에 불필요한 쉼표가 놓인 격.
 
쉼 없이 읽어도 되는 단어를 느리게 읽으면 한순간 읽는 리듬이 깨질 수 있다. 의미 이해도 그만큼 더뎌질 수 있다. 한 단어만 이러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한 단어만 문제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김 밥과 햇 곡식을 돌 다리 위에서 먹었다.’ 극단적인 예시지만 붙어야 하는 세 단어가 모두 떨어져 있다. 예를 들어 김밥은 김에 싼 밥으로 한 단어로 인정받는 보통명사. 김과 밥을 띄어 쓰면 불필요한 공백이 생겨나 읽는 리듬이 툭툭 끊긴다.'회원 가입'과 읽는 리듬의 문제'회원 가입'은 붙여도 띄어도 되는 대표 예시. 원칙적으로는 띄우되 붙여도 무방한 예외 표현이다. 복합어가 아니라 두 단어 연결이지만 한 단어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실제는 두 단어이나 한 단어인 양 오래 사용되어왔다. 그러므로 한 단어로 붙여 쓰고 살짝 빨리 읽어도 괜찮다.
 
물론 띄어도 되지만 가독성이 떨어질 수 있다. 공백으로 인해 두 단어를 읽듯 조금 느리게 읽기 때문. 뜻에 맞는 속도를 갖추지 못하는 것은 가독성이 떨어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한 단어인 양 인식되는 것을 굳이 띄어서 느린 속도로 읽히게 할 필요는 없다.
 
글쓰기/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글쓴이의 생각/느낌 등이 제대로 전달되는가 하는 것. 띄어쓰기는 두 번째 문제다. 띄어쓰기를 간과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말하려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선 정확한 표기법을 따를 필요가 있다.
 
정확한 띄어쓰기는 위에서 강조했듯 가독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띄어쓰기는 결국 사람들이 글을 읽는 속도/리듬과도 관련 있기 때문. 적절한 공백을 통한 속도 조절은 내용의 적절한 이해와 지속적인 읽기 행위에 큰 도움을 준다. 띄어쓰기가 부여하는 읽기 속도/리듬이 심리와도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는 뜻이다.속도/리듬 부여하는 수단!가독성은 이처럼 문법뿐만 아니라 심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띄어쓰기 등 문법을 잘 지킨 글은 가독성이 높을 가능성이 크다. 오류 부분이 눈에 밟히지 않으면서 말하려는 바를 올바르게 표기하기 때문. (물론 띄어쓰기만 맞는 글을 좋은 글이라 할 수는 없으며, 시대에 맞지 않는 옛날식 띄어쓰기도 없지 않다.)더불어 가독성은 인간 심리와도 깊이 연관된다. 우리는 글을 접할 때 글자나 단어를 하나하나 따져가며 읽지 않는다. 글자/단어를 분석할 목적으로 읽는 국어학자가 아닌 이상 그러지 않는다.
 
크게는 문단/단락 단위로, 작게는 문장 단위로 그 뜻을 뭉뚱그려 이해하며 읽는다. 가독성은 글자/단어 하나하나보다는 문단 등이 적절한 속도/리듬을 타며 읽히는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띄어쓰기는 글자/단어는 물론 문단/단락/문장 전반에 속도와 리듬을 부여/조정하는 기능을 한다.
가독성을 높이려면 띄어쓰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띄어쓰기가 단순한 표기 규정이나 문법 문제를 넘어, 글에 리듬과 속도를 부여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