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더미같이 쌓여진 그릇을 씻기 위해 개수대 앞에 선다 밥공기들을 하나하나 '퐁퐁'을 묻혀 닦아내다가 문득 씻지도 않고 쓰는 마음이 손바닥에 만져졌다먹기 위해서 쓰이는 그릇이나 살기 위해 먹는 마음이나 한번 쓰고 나면 씻어두어야 다음을 위해 쓸 수 있는 것이라 싶었다그러나 물만 마시고도 씻어두는 유리컵만도 못한 내 마음은 더렵혀지고 때 묻어 무엇하나 담을 수가 없다금이 가고 얼룩진 영혼의 그릇이여 깨어지고 이가 빠져 쓸데가 없는듯한 그릇을 골라 내면서 마음도 이와 같이 가려낼 것은 가려내어 담아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누룽지가 불어서 좀처럼 씻어지지 않는 솥을 씻는다 미움이 마음에 눌어붙으면 이처럼 닦아내기 어려울까  닦으면 닦을수록 윤이 나는 주전자를 보면서 씻으면 씻을수록 반짝이는 찻잔을 보면서 영혼도 이와 같이 닦으면 닦을수록 윤이 나게 할 수는 없는 일일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그릇은 그냥 한 번만 써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뼛속같이 씻으려 들면서 세상은 수십 년을 살면서도마음 한번 비우지 못해 청정히 흐르는 물을 보아도때 묻은 정을 씻을 수가 없거나 남의 티는 그리도 잘 보면서도 제 가슴 하나 헹구지도 못하면서 오늘도 아침저녁을 종종걸음치며 죄 없는 냄비의 얼굴만 닦고 닦는 것이다 -'냄비의 얼굴은 반짝인다',송유미   보이는 그릇(물건)과 보이지 않는 마음(영혼)을 대비한 비유가 재미난 시다. 화자(여성)의 섬세한 심성과 현실의 체험이 잘 녹아있어 우리의 지나온 삶을 성찰하게 한다. 시 속 화자는 일상속에서 느낀 체험을 소중히 생각한다.   밥공기를 닦다가 씻지도 않고 쓰고 있는 자신의 마음(영혼)을 떠올린다. 시가 출발하는 인식의 발견이다. 영혼에 반짝 불이 들어오는 시의 순간이다.   한번 쓰면 씻어두는 그릇처럼, 우리의 마음도 늘 깨끗이 씻어뒀다가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일까?    더렵혀진 마음, 죄를 지은 마음이 그릇 씻듯 씻겨 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죄를 지은 마음에 악취가 날까? 보이지 않는 영혼의 고통, 아, 불쌍하구나 .    금 가고 얼룩진 나의 영혼이여! 깨어지고 이 빠진 쓸데없는 그릇을 보면서 화자는 마음도 가려서 깨끗이 써야한다고 반성한다.    또한 시속의 화자는 인간의 죄(미움)와 슬픔은 좀처럼 씻기지 않는 누룽지에 비유한다. 죄(미움)가 마음에 눌러붙으면 누룽지처럼 눌러 붙어 닦아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주전자나 냄비나 찻잔은 물질이라 윤이 나게 닦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금 간 영혼은 닦아도 잘 지울 수가 없다.    인간의 영혼이란 그릇이나 찻잔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이 만든 영혼이기 때문이다.   2024년도 아쉽게 저물고 있다. 마음을 씻고 지난날을 돌아볼 때다. 때묻은 영혼을 윤이 나게 닦아보자. 황혼의 시간이다. 팔이 아프게 영혼을 닦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