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190-1번지에 가면 태종 이방원의 둘째 아들이고 세종대왕의 친형인 효령대군 이보(李補:1396~1486)의 묘가 있다. 부인은 좌찬성 정역의 딸 예성부부인이며 6남 1녀의 자녀를 두었고 측실에게도 1남 1녀를 두었다.   그는 독서를 즐기고, 활쏘기에 능해 태종을 따라 항상 사냥터에 다녔으며 효성이 지극했다. 형인 양녕이 세자에서 폐위되자 자신이 세자로 책봉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동생 충녕이 세자로 책봉되자 불교에 심취하였다.   1417년 자신의 아호(雅號)이기도 한 연강(蓮江)이라는 법명(法名)으로 수계를 받았고, '법화경', '금강경', '원각경', '반야심경'등 불경의 번역과 교정에도 힘썼다.   또한 조선의 숭유 억불 정책으로부터 불교를 옹호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불교의 보호와 진흥에 공헌한 바가 매우 크다.   이와 같이 유교문화 속에서도 불교에 독실하여 수많은 유신(儒臣)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승도(僧徒)를 모아 불경(佛經)을 강론하도록 했다.   1435년 회암사 중수를 건의했고, 1464년(세조 10) 원각사(圓覺寺)를 창건하게 되자 조성도감 제조(造成都監提調)가 되어 역사(役事)를 친히 감독했고'원각경(圓覺經)'을 국역(國譯)하여 간행하였다.   그는 어릴적부터 글 읽기를 좋아하여 30세 전에 이미 학문과 덕성을 이룩하였고, 붓글씨에도 능해 명필이었다고 전해진다. 충녕과는 나름 우애가 깊었고 세종이 자기 집에 들르게 되면 밤이 깊도록 국사에 대해 의논했다고 전한다.   성격이 원만하여 친족들과의 우애도 깊었고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까지 거치면서 91세까지 장수하였다. 방배동의 묘소는 1972년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고, 사당은 1736년(영조 12)에 왕명으로 그의 묘 아래에 세우면서 '청권사'라고 하였다.    그의 시호는 정효(靖孝)이며, 1865년(고종 2) 양녕대군과 함께 세종대왕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대군은 생전에 손자 33인, 증손자 109인으로 후손이 크게 번성하여 전주 이씨 파종 회 중에 자손이 가장 번성하였다고 한다.   이곳의 산세는 신림동 관악산(632m)에서 동북쪽으로 하나의 지맥을 뻗어 남태령을 지나 우면산(293m)을 일으킨다. 우면산에서 북서쪽으로 뻗어온 지맥은 방배동에서 과협을 하고 서리풀공원에 봉우리를 일으켜 이 묘소의 현무봉이 되었다. 대군의 묘소는 현무봉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지맥의 끝자락에 그의 부인인 예성부부인과 함께 쌍분으로 모셔져 있다.   그러므로 이곳은 조산(祖山)인 관악산을 마주하고 있어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의 혈장이다. 관악산은 돌(石)산으로 원래 안산으로는 적합하지 않지만 풍수에서 회룡고조혈에 있어서는 조산이 나의 조상에 해당되므로 흉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풍수 고서에서는 이러한 회룡고조혈에 대해 안산은 얻을 수 있으나 청백 중 하나는 갖출 수가 없고 혈장은 단조로우나 속발하는 혈이다. 라고 적고 있다.   이와 같이 이곳 묘역도 좌우 청룡·백호 자락이 혈장을 완전히 감싸주지 못해 장풍국(藏風局)은 되지 못하고 있다. 이곳은 유혈(乳穴)의 혈장으로 입수가 분명하고 묘소 앞으로는 전순이 뚜렷해 혈장의 생기를 잘 가두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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