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녹촌리 산 14-3번지에 가면 조선조 16대 인조 임금의 동생 능원대군 이 보(1598~1656)의 묘가 있다.   이 보는 선조의 아들인 정원군과 인헌왕후 구씨의 둘째 아들이자 바로 인조의 친동생이 된다.   11세에 선조의 왕자인 의안군이 후사가 없자 백부께 양자로 입양되어 능원군에 봉해졌고 1631년(인조 9) 대군에 진봉되었다.   그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임금을 모시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오위도총부도총관으로 국난극복에 힘썼으며 척화론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병란 후 세자를 인질로 요구할 때 자신이 대신 갈 것을 주청하였으며 특히 인질로 끌려간 사람들의 가족을 극진히 보살펴 주기로 유명했다.   이후 일체 조정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모든 문서에는 청나라 연호를 쓰고 청에 대항하며 절개와 의리를 지켰다.   1656년 향년 59세로 세상을 떠나 처음에는 풍양(남양주시 진접읍)에 묻혔으나 1689년(숙종 15) 현재위치로 이장되었다.   이 묘소는 숙종의 명으로 묘소의 석물들을 강화(江華)에서 채취한 석재로 특별히 제작하였다.   1647년(인조 25)에 건립한 신도비는 넓고 커다란 귀부(龜趺)와 이수(螭首)가 화려하고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귀부는 거북꼬리가 틀어져 위로 올려진 모습인데 여기에 물이 있으면 극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비문은 좌의정 송시열이 지었고, 이조판서 조상우가 글씨를 썼으며 영의정 최석정이 발문을 맡았다.   그가 운명하였을 때 효종이 친히 조상하였고 훗날 인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현재의 묘역은 첫 번째 부인 문화부부인(文化府夫人)과의 합장묘이며, 바로 밑에 두 번째 부인 영암김씨의 묘가 있다.   이 묘역은 2002년 9월 16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15호로 지정되었으나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이곳의 산세는 한북정맥 포천시 수원산(709.7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려온 지맥이 가평군 상면에서 주금산(815m)을 일으키고 여기서 계속 내려와 남양주시 진접읍의 철마산(709.5m)을 지나 오남읍에서 천마산(812m)을 일으켜 주산이 되었다.   대군의 묘소는 주산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내려와 혈장 뒤에서 170m의 작은 봉우리를 일으키고 계속 내려와 과협을 한 후 비룡입수하여 돌형의 혈장을 만들었다.   혈장 뒤편의 과협은 앞쪽에 진혈이 맺혀 있다는 증거가 되므로 혈장에는 생기가 가득하다.   이곳은 혈의 사상으로 볼 때 비룡입수를 하여 돌혈(突穴)의 형상으로 보이나 당판의 길이가 좀 있어 유혈(乳穴)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좌우의 용호는 좌청룡 자락이 높이나 거리 면에서 완전하지는 못하나 우백호는 양호해 겨울의 차가운 북서풍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곳의 수세는 묘역 좌우 용호 자락에서 흘러나온 물들이 혈장 앞으로 흐르는 녹촌천에 흘러들어 서출 동류로 묵현천에 합류한다.   청룡 자락 뒤편에서 흘러나오는 묵현천은 이 묘소의 암공수(暗拱水)가 되어 혈장의 생기를 한 번 더 가두어준다.   일부에서는 이곳의 형국을 대신과 무리들이 임금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예를 갖춰 알현하는 상제봉조형(上帝奉朝形)의 명당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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