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충돌하는 두 의견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말하는 양비론(兩非論)을 중도(中道)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도둑을 잡았는데, 만일 도둑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 나는 의적(義賊)이라 주장하며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면, 그 도둑을 응징하라는 사람들의 주장 역시 양비(兩非)의 대상인가?
흉기를 든 강도가 가택을 침입하였는데, 그 강도를 제압하기 위해 주인이 같이 무기를 들었다면, 무기를 든 강도와 무기를 든 집 주인 모두가 양벌(兩罰)의 대상이 되는 건가?
물으나 마나, 하나 마나한 논란에 대해 소위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양시론 (兩是論)내지 양비론(兩非論)을 펼치고, 또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의로운 중도라 할 것인가?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요즘처럼 인간의 양심이 마비되고, 인간의 이성(理性)조차 양극화된 시절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어쩌다 우리가 이토록 저급한 이성 사회를 만들게 되었을까?
우리 역사에 남인(南人)과 북인(北人)이 싸우고 서인(西人)과 동인(東人)이 나누어지며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이 대립하던 시절은 있었지만, 이토록 이성(理性)과 비이성(非理性)이 양극화된 때는 없었던 것 같은데, 논리 없는 '법과 원칙'이란 기둥 없는 고층빌딩과 같고, 이성(理性) 없는 양심이란 주정(酒精) 없는 술(酒)과 같다.
불의(不義)를 정의(正義)로 치환하고, 듣기만 해도 가슴 뭉클한 애국이나 사랑, 어버이, 엄마 등 정겨운 단어의 의미마저 혐오스러운 어감으로 바꾸어 놓은 사람들이 이제는 불법(不法)을 합법(合法)이라 우긴다.
중도(中道)란 호(好)와 불호(不好)의 치우침을 경계한 말일 뿐, 선(善)과 악(惡)의 모호함을 지칭하거나 기회주의를 선양(煽揚)하지 않음에도, 사악한 자들이 자신의 불의를 희석시키기 위해 중도를 강조하기도 하며 양비론을 정의인양 포장한다.
디지털의 세계에서는 오직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1(truth)'과 '0(false)'의 코드 값만 있을 뿐, 1도 아니고 0도 아닌 판단은 없기에 논리회로가 구성된다. 마찬가지로 논리와 증거만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할 법정에서는 유죄(有罪)와 무죄(無罪)의 판단이 있을뿐, 유죄도 아니고 무죄도 아닌 중도(?)의 판결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따라서 명약관화(明若觀火)한 현상 앞에서 중도(中道)를 고집하거나 양비론(兩非論)을 내세우는 것은 비이성(非理性) 내지 기회주의이거나 위장된 악행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양심(良心)을 버리고 기득권을 보호하고 싶거나, 기득권에 편입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비기득권(非旣得權)이 척결되고 나면 과연 기득권만의 세상이 될까?
 
내가 단언하지만, 기득권만 남은 세상이 오면, 그 기득권 내에서 틀림없이 또 다른 기득권이 나타날 것이며, 그 사회는 다시 기득권과 비기득권이라는 계층으로 양분되어 갈 것이다. 그러니까 N극과 S극으로 나누어진 긴 막대자석은 아무리 쪼개도 다시 양극(兩極)을 가진 자석으로 남는다는 것이 영구불변의 자연법칙이기에…
분열을 조장하고 선호하는 사회는 영원한 분열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단 한 개의 원자(原子)와 원자가 뭉쳐진 자석은 반드시 N극과 S극을 띄면서도 강력한 자력(磁力)을 형성한다.
서산(西山)으로 기우는 해(日)는 내일 다시 볼 수 있지만, 지는 해를 쫓아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리는 사람은 끝내 어둠속을 헤매게 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