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오래 있을 거야,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잘 모르겠어,(…)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내가 무엇을 사랑하고무엇을 후회했는지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끝없이 집착했는지매달리며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때로는당신을 등지려고도 했는지 -'서시', 한강
2025년이 밝았다 새해라고 하지만 온 나라가 뒤숭숭해 밝은 아침햇살 같은 싱그러움도 못 느끼겠다. 안타깝다. 국민소득 4만 불의 선진국 대한민국이 어쩌다가 이 꼴이 되었는지 참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정치가 말이 아니다.
나라가 어찌되던 국민이 어찌되던 아랑곳않고 자신들의 당리당략만을 추구하는 그들만의 진영논리에 갇힌 한심한 모리배들 같은 정치인들이 역겹다 못해 눈앞에서 아예 사라졌으면 좋겠다.
작년, 한국에 기적같은 영광의 '노벨 문학상'을 안겨 준 한강 작가의 초기 시, '서시'를 읽는다. 자신의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운명에 대한' 이야기다. 한강 자신도 아마 잘 몰랐으리라. 자신이 노벨 문학상 수상의 주인공이 되리라고는.
오늘 아침 뉴스에 뜬 '제주 항공' 참사 현장에 나타난 반려견 '푸딩이!'. 조문 사진이 한 편의 시처럼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가족 9명을 한꺼번에 잃은 반려견 푸딩이! 사람도 아닌 짐승인데 조문 장에 나타나 말없이 물끄러미 위패를 바라보고 있다. 인간보다 더 진지하게!
어느날 운명이 찾아 와 나에게 말을 붙인다, 내가 네 운명이라고. 그동안 "내가 네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 모르겠어, 말은 필요하지 않을꺼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그렇다 누가 자신의 미래를, 자신의 운명을, 신이 아닌 이상 알 수가 있단 말인가?아, 누가 말했던가, 기적을 만드는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가 만든다고. 그렇다 바다위를 걷는 것 만이 기적이 아니다. 오늘 내가 두 발로 서서 땅위를 신나게 걷는 것도 하나의 기적이다.
새해에는 알 수 없는 운명 앞이지만 나의 운명을 애인처럼 사랑하면서 살아봐야겠다.젖은 바람이 분다 황룡사 빈 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