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선황제께옵서 1919년 1월 21일 승하하시었다.    향년 66세이더라. 전하는 그토록 바라시던 조선의 주권을 되찾지 못하고 한스러이 가시었다.   점심 나절 식혜를 잡수시었는데 독이 든 지는 알 수 없으나, 저자에 독살설은 끊이지 아니하더라.   배후로는 윤덕영이 유력한 바, 그는 일찍이 일제에 자작 작위를 받고는 이후 옥인동(서촌) 절반 가량의 땅을 사들이여 그 위세가 대단하더라.   그는 순종의 황후 순정효황후의 큰아비이더라. 나라를 빼앗기고 황후마마가 옥새를 치마폭에 숨기시자 그는 치마를 들추고, 옥새를 찾아내었더라. 1905년(올해와 같은) 을사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1907년 6월 고종 황제는 화란국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보내더라.   이준, 이상설, 이위종 세 명의 특사는 일제 침탈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각고의 노력으로 헤이그에 당도 했으나, 회의장에는 초대장이 없어 들어가지도 못하였더라.   이들은 일본과 영국의 훼방으로 회의장 입장이 결국 좌절되었더라. 주최국 조차 식민지를 가진 나라들이니 그러한 바, 이미 만국의 물정이 그러하더라. 특사들은 나름대로 언로를 통한 활동에 전념하다가 먼 이국땅에서 원통히 순사하고 말았더라.이 일로 고종은 아들 순종에게 1907년 7월 20일 황제위를 양위하고, 덕수궁에 기거한다. 창덕궁에 기거한 순종에 비하여, 고종을 '덕수궁 전하'라고 칭했다.   그후 12년간을 실권 없는 상왕으로 살았다. 조선에서 태조, 정종, 태종, 단종, 고종 외에는 양위하고 상왕으로 산 임금이 없다. 때는 모두 정치적 격변기이다.   고종이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하자, 궁궐 앞 대한문에는 백성들이 모여들었다.    일제는 고종의 국장을 조선식이 아닌 사카키 등 일본식 장례의식으로 하자, 민심은 폭발하여 장례식인 3월 3일을 기해 3.1 만세운동이 전국 방방곡곡 일어나게 된다. 일본의 총칼 앞에도 민족의 저항은 거셌다.  조선의 왕들 중 고종만큼 불행한 왕도 없었고, 또한 인간적인 왕도 없었다. 철종이 후사가 없이 승하하자, 왕실의 먼 친척이던 흥선대원군이 등장한다.    대원군은 장자가 있슴에도 둘째 아들이던 그가 왕이 된다. 그러나 12세의 어린 고종을 대신하여 대원군이 조정을 장악하니, 사람들은 경운동에 있던 사가를 '운현궁'으로 불렀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 일제의 낭인들이 경복궁을 침입하여, 국모이던 명성황후를 색출, 시해하고 유해를 불태운다. 그는 중전이던 지어미도 지켜주지 못한 무력한 왕이었다.   1896년 2월 '아관파천' 이 일어나 당시 실세이던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게 되는데, 그 길은 지금도 덕수궁 옆 샛길로 남아있다. 왕이 다니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좁은 이 길을 그가 지났다니!  고종은 암살의 두려움에 지독한 불면증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그럼에도 가배는 끊지 못했다.   그는 독일 귀화인이던 손탁이 타준 가배를 좋아했다. 고종은 '몽금포 타령'을 좋아하고 덕수궁 내 '정관헌'에서 가배 마시기를 즐겼다.  그는 아들 순종과 가배 마시기를 즐겼는데, 러시아 역관 김홍륙은 그 점을 이용, 가배에 독이 든 아편을 탔다. 이른바 '김홍륙 독차 사건'이다.   한 모금 마셔본 고종은 가배 맛이 이상하다고 마시지 않았는데, 순종은 마신 후 피를 토하고 기절하였다. 이후 치아 상당수가 빠져 틀니를 끼는 등 평생 후유증에 시달렸다. 암살 미수 사건 주모자와 가담자 두 명은 교수형에 처해진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이자 순종의 동생 의친왕 이강은 황족 중 유일하게 독립운동에 나선 인물이다.    순종에겐 후사가 없었기에 왕위 계승 서열 1순위였지만, 순헌왕귀비 엄씨의 견제로 스무 살 어린 영친왕 (왕비 이방자 여사) 이 황태자에 오른다.   1910년 한일합방 후 이강 공으로 강등되어 일제의 극심한 감시 속에 살았다. 한국전쟁 후 사동궁(인사동)에 살다 1955년 별세했다.   의친왕의 차남 이우는 열 살에 일본으로 가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1944년 일본군 장교로 중국에서 복무하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에 희생된다. 사후 그의 영혼은 원통하게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있다.   그는 고종의 따님 덕혜옹주의 조카로 영화 '덕혜옹주'에서는 '고수'가 연기한다. 운현궁에는 그가 살았던 '양관' 이 지금도 클래식한 모습으로 남아있으니 한 번 보시길.  고종과 명성황후의 묘는 홍릉으로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으며, 순종릉도 유릉이라 하여 합쳐서 '홍유릉' 이라 한다. 묘는 황제의 묘이므로 삼선 신도로 릉에 이르고, 수호석물 예우급이 한층 높여져 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