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행태가 분노를 유발시킨다. 공식석상에서 행사 초대 손님을 위해 ‘다케시마 카레’라고 명명한 음식까지 버젓이 내놓은 일본의 작태 때문이다.
얼마 전 일본 시네마 현에서 독도의 날 행사를 할 때 일이다. 공식 석상에 ‘다케시마 카레’라는 음식으로 그곳 참석자들을 접대하였단다. 이 날 일본은 우리 땅인 독도를 자기네 땅인 양 착각, 벌써 20년이 넘도록 독도의 날 행사를 해오며 손님 접대 음식까지 독도 명칭을 붙인 것이다. 과연 그 카레 맛은 어떠했을까? 우리가 만약 그 맛을 봤다면 세상에서 가장 씁쓸한 맛일 것이다.
일본은 어찌 보면 국민성이 매우 자존감이 낮은 나라인가 보다. 작은 섬나라이다 보니 그들은 자나 깨나 넓은 땅덩어리에 대한 갈망이 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독도는 분명코 우리 땅인 게 사실 아닌가. 그러나 일본이 입만 열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을 보면 참으로 졸렬하게도 이런 방법으로나마 자위를 삼는 것은 아닐 런지.
이런 일본을 대하노라니 필자의 어린 날이 문득 떠오른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반 아이들과 쉬는 시간마다 학교 운동장에서 하던 머리핀 따먹기는 참으로 즐거운 놀이였다. 우선 핀 따먹기를 위해 땅에 선을 긋고 원을 만든다. 그리곤 선에서 몇 발짝 떨어져서 아이들이 각자 몇 개씩 내놓은 한웅큼의 머리핀을 뒤로 던지는 놀이였다. 이 때 운이 좋으면 핀이 몇 개든 용케 원 안에 들어간다. 핀을 각기 돌아가며 던지는데 원 안에 오롯이 들어간 머리핀만 차지하는 놀이였다. 반에서 가장 덩치가 큰 아이는 땅 위에 그려진 동그란 원에 채 들어가지 못하고 선에 걸쳐진 핀도 자기 것이라고 우기곤 했다. 
 
이것은 엄연히 놀이의 반칙이련만 그 애는 핀 따먹기를 할 때마다 몇 개씩 동그라미 선에 걸쳐진 핀도 꼭 제 것이라고 우겼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자신의 핀을 억울하게 잃었다. 이 때 필자 것도 많은 개수를 그 아이의 억지에 의하여 고스란히 빼앗기곤 했다. 당시 어린 마음에도 그 아이의 원칙에 벗어난 변칙이 참으로 속상했고 한편 억울하기조차 했다. 양상은 다르지만 본질에서 벗어난 그릇된 욕심에 의한 주장은 억지를 넘어서 불의이고 편법이다.
지난날 일본 정부는 당시 하토야마 총리가 초 중고등학교 교과서 및 해설서와 외교청서(靑書)에 “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나 일본 고유 영토인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내용을 싣는가 하면, 국경을 나타내는 지도에 독도를 일본 영토에 포함시켜서 대한민국의 주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을 감행 하였다. 이런 일본의 치졸한 태도야 말로 억지 주장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런 허위와 거짓 주장은 17세기에 도쿠가와 막부가 발행한 ‘죽도(竹島 울릉도) 도해 면허(渡海免許)’와 송도(松島) 도해 면허 때문 일 것이다. 일본은 이 문건을 당시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 땅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혀 그 증거가 아니다. 그 당시 도해 면허는 외국에 건너가는 허가장에 불과했다. 
 
즉 오늘날 패스포트와 같은 구실을 했기에 도해 면허 대상지인 울릉도와 독도는 엄연히 일본 영토가 아닌 조선 왕조 땅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일 뿐이다. ‘다케시마 카레’이야기를 하려니 최근 바뀐 가사인 ‘독도는 우리 땅’ 노래 한곡조가 입안에서 절로 흥얼거려진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87K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동경 백삼십이 북위 삼십칠/평균기온 십삼도 강수량은 천팔백/독도는 우리 땅<후략>
독도는 신라의 이사부가 우산국을 병합한 서기 512년부터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상으로나 대한민국 땅이다. 지난날 20세기 초 구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 한반도를 침략할 때 독도가 가장 동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1905년도에 이곳을 먼저 침탈했었다. 그리곤 1910년 한반도 전체를 집어 삼켰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 115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의무 교육 교과서와 외교청서까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표기를 해온 것을 보면 구 일본주의 제국 망령이 아직도 그들 가슴에 살아남아 있는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