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수 세기 전만 하더라도 인류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하늘에 보이는 해와 달 그리고 모든 별들이 지구에 부속된 천체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후 관측기술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우리 지구는 우주 공간에 떠 있는 한 개의 행성으로 태양에 부속된 천체일 뿐이라는 사실을 겨우 인식하게 된다. 그러니까 그 때 까지만 해도 인류가 인식한 우주는 태양계에 국한되어 있었지만, 드디어 고성능의 망원경을 가지게 되자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가 무수한 별들의 군집체(群集體)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비로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라는 행성이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가를 자각하게 되었다.물론 지금은 그 무수한 별(太陽)들의 군집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은하수조차 무한해 보이는 우주 공간 내의 극히 좁은 한 지역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제임스 웹’ 망원경 등으로 관측했기 때문에 이제 우주의 규모를 특정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로 보이고,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이 우주는 어디까지나 우리가 관측 가능한 범위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아무튼, 현 세기에 이르러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이 행성이 우주 공간을 부유하는 한 개의 초라한 암석 구체(球體)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이야 드물겠지만, 인류가 처음으로 지구를 하나의 온전한 구체로 확인한 사진은 1972년 12월 7일, 아폴로 17호 임무 중에 촬영된 ‘블루 마블(The Blue Marble)’이라 불리는 사진이다. 이 사진은 달로 가던 아폴로 17호 우주선이 지구에서 약 29,000km 떨어진 우주 공간에서 촬영한 것인데, 당시 이 사진은 지구가 하나의 푸른 행성으로서 얼마나 고립되고 아름다운지를 우리에게 강렬하게 전달해 주는 역사적 사건이었다.그리고 다시, 1977년 달(月) 탐사에 한창 열을 올리던 미국의 NASA 에서는 좀 더 광범위한 우주탐사를 위해 지구인의 메시지를 담은 전설적인 ‘보이저’ 우주 탐사선을 태양계 너머로 발사하게 되는데, 지구에서 약 60억 킬로미터나 떨어진 지점에서 지구를 바라본 그 유명한 사진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을 지구로 전송해 왔다. 그러니까 TV 화면을 구성하는 무수한 픽셀 중에 단 한 개의 픽셀로 인식되는 그 푸른 점 하나가 우리가 그토록 지지고 복고 싸우며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말하던 ‘지구’라니? 지구는 광대한 공간 속을 부유하는 한 개의 미세먼지와 같고, 그 미세먼지 위에 바이러스처럼 기생(寄生)하는 인간이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가를 일깨워줌으로써 인류의 겸손과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인간이 자신의 고향인 지구를 얼마나 소중히 여겨야 하는 지를 깨닫게 한 메시지가 되었던 것이다.지구의 나이가 수 십 억년이라고 하는데, 이 미세 먼지 같은 혹성 위에서 고등 생명체로 진화한 인류가 불과 수 백 년 사이에 단 하나뿐인 이 지구를 어떻게 파괴해 왔는지? 지금 일각에서는 또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야 한다는 공상을 실천하려는 몽상가도 있긴 하지만, 그것은 마치 호화 유람선을 타고 태평양을 항해하던 승객들이 서로 싸우다가 배에 불을 지르고 뗏목으로 옮겨 타겠다는 발상과 전혀 다르지 않아 보인다.전대미문의 자연재해와 각종 인재(人災)로 표류하고 있는 이 ‘창백한 푸른 점’ 위에서 실시간 진행되고 있는 분쟁과 전쟁을 보면서, 과연 인류의 집단 지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선저(船底)가 파손되어 심각한 침수가 진행되고 있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일단의 사람들이 스카이라운지에서 자신들만의 파티를 즐기고 있는가 하면, 난파되고 있는 선박의 선교(船橋)만을 장악하기 위해 혈투를 벌이고 있는 그 무지한 극소수 인간들에게 언제까지 우리 공동체의 운명을 맡겨 둘 것인가?내 가족, 내 이웃, 내 고장, 내 나라너머 인류가 오직 ‘푸른 점’ 하나 위에 공생하는 공동 운명체임을 자각하기만 하면, 보잘 것 없는 인류가 드디어 이 거대한 우주의 진정한 지성체(知性體)로 진화, 신(神)이 되지 않을까 한다. “신은 자신의 형상을 본 따 인간을 창조했다고 하지만, 아직 인간의 마음속에 그의 마음을 이식(移植)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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