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후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 들어가 소년공이 됐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표현하면서 ‘나의 어린 시절은 참혹했다’고 썼다. 어머니는 경기도 성남의 시장 공중화장실에서 청소도 하고 휴지를 팔아 집안의 생계를 유지했고 시장에서 버린 썩은 과일로 끼니를 떼운 적이 많았다고 했다. 동시대의 가난했던 삶을 살았던 사람들도 이재명의 어린시절에 대해 도저히 상상활 수 없을 정도라며 전형적인 ‘흙수저’ 출신이라고 평가한다.소년공 시절 공장 프레스기에 한쪽 팔이 끼어들어 가면서 장애를 얻게 됐고 선배 소년공에게 구타를 당하면서도 생존의 강한 집착으로 버텼다. 그에게는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이 없다. 대신 공장 노동자 동창이 있으며 그들 중에는 소방관이 된 친구와 자영업을 하는 친구들이 있고 지금까지 교우한다고 했다.대학 시절 알게 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하게 했고, 이는 사법고시에 매진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됐다고 한다.1986년에 사법고시(연수원 19기)에 합격했다. 연수원 시절 들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의는 그를 노동 인권 변호사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고 회고한다. ‘성남시민모임’을 창립해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 특혜 의혹을 제기하는 등 시민운동을 이끌다 2005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했다.2008년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아 낙선했으나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에 당선돼 4년 뒤 재선까지 성공했다. 성남시장 시절 추진한 무상 교복, 공공산후조리 지원, 청년 배당 등 보편적 복지 사업은 그의 정책 브랜드가 됐다.전국구 정치인으로 부상한 그는 2016년 11월 촛불 정국에서 선도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며 ‘사이다’ 이미지를 바탕으로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다. 2017년 대선 경선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패했지만 존재감을 드러내며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승리했다. 경기도정을 이끄는 동안 기본소득을 비롯해 기본금융, 기본주택 등 ‘기본 시리즈’를 자신만의 정책 의제로 구체화하며 대권 재도전의 칼날을 갈았다.
2021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낙연 후보를 물리치고 승리해 본선에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경선 과정에서 이낙연 후보 측이 제기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은 끝내 본선에서 발목을 잡았고, 윤석열 후보에게 대권을 내줘야 했다. 윤석열과의 득표율 차이는 0.73%포인트로 역대 대선 사상 최소 득표율 격차였다.이재명은 대선 패배 후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으로 2022년 6월 지방선거를 이끌었다. 그와 동시에 송영길 당시 민주당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하고자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을 비우고 떠나자 그곳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2022년 8월 당 대표로 선출됐고 당 대표 취임 1년을 맞은 2023년 8월 31일, “무능 폭력 정권에 국민 항쟁을 시작하겠다”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고 그 사이 검찰은 두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9월 23일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돼 정치적 위기를 맞았지만 9월 27일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며 다시 한번 벼랑 끝에서 살아남았다.지난해 1월 2일에는 부산 가덕도신공항 부지 방문 도중 목에 칼을 찔리는 습격을 당했다. 동맥 손상을 피해 목숨을 건진 뒤 이끈 총선에서 야권의 압승을 견인하며 대권주자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다졌다.12·3 비상계엄 당시 야당 대표로 계엄 해제 요구 안건을 통과시킨 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까지 완수한 순간, 사실상 대선 재도전도 확정지었다. 수많은 고비를 넘으며 각종 여론조사에서 상당한 격차로 당선이 유력시된다는 분석이 있었으나 테러 암시 등 신변의 위험을 느끼면서 방탄조끼와 방탄유리로 위험을 넘고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