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의료계의 의대 정원 갈등으로 빚어진 의료 공백이 암과 같은 중증 질환 환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이자호 교수, 인제대 보건행정학과 정성훈 교수 공동 연구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중앙암등록사업 통계 자료를 이용해 2008∼2015년 조기 유방암 진단을 받고 1년 내 수술한 환자 4350명을 대상으로 '진단-첫 치료(수술)'가 60일 이내 이뤄졌는지에 따른 사망률을 비교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고 17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여성 건강 관련 국제학술지(BMC Women's Health) 최근호에 발표됐다.이번 연구에서 유방암의 진단부터 수술까지 걸린 기간이 60일 미만인 환자는 3625명, 60일 이상인 환자는 725명이었다. 연구팀은 연령, 소득, 지역, 의료기관 유형 등의 다양한 변수를 보정한 후 두 그룹 간 사망률을 분석했다. 그 결과 진단 후 수술이 60일을 넘긴 환자들의 사망률은 6.1%로, 60일 미만인 그룹의 2.4%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연구팀은 이 결과로 볼 때 60일 이상 수술 지연 그룹의 사망 위험이 60일 미만에 견줘 2.09배 높은 것으로 추산했다. 치료 기준을 45일로 낮춘 분석에서도 두 그룹 간 사망 위험비는 1.49배 차이를 보였다.이는 치료의 지연이 환자의 생존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경향성을 명확히 보여준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특히 치료 지연의 영향은 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농촌 거주자(3.12배), 저소득층(2.99배), 동반 질환을 가진 환자(2.66배)에게서 더욱 두드러졌다. 의료 접근성의 불균형과 사회경제적 요인이 암 환자의 치료 결과를 얼마나 심각하게 좌우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이자호 교수는 "이번 연구는 유방암 환자에게서 '얼마나 빨리 암을 발견했느냐'뿐 아니라 '얼마나 빨리 암 치료를 시작했느냐'가 생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전국 데이터를 통해 처음으로 입증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교수는 "다만 치료가 60일 이후로 지연된 유방암 환자의 비중은 전체 유방암 환자의 1.2%에 불과했다"면서 "이는 우리나라의 의료 접근성이 매우 높은 수준임을 방증하는 것이지만, 향후 의료공백 상황에서 이 비율이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유방암 환자의 수술을 담당하는 의료진도 이번 연구 결과에 공감했다. 서울대병원 유방외과 이한별 교수는 "조기 유방암의 경우 수술이 가능한 병원에서 하루라도 빨리 수술받는 것이 예후에 중요하다"며 "60일이라는 기준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생존의 경계선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조기 유방암 환자에게 60일 또는 45일 이내 수술 착수라는 명확한 치료 목표치를 제시하는 것은 물론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정책(교통·숙박 지원, 거점 병원 확충 등) 마련, 다른 암종과 치료 단계(수술·항암 등)에 대한 후속 연구로 확산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