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과거 출세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변호사 자격을 얻는 사법시험 합격이 개천에서 용 나는 것에 비유될 만큼 극도로 어려웠던 영향이 컸다. 1970년대까지 사시 합격률은 최저 0.2%에서 평균 1%대 중반을 기록했는데, 60명을 선발한 1975년 사시(17회)에서 후일 대통령이 된 노무현이 고졸 출신으로 그 벽을 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이 1981년 사시 합격자 수를 300명으로 갑자기 3배 늘렸지만, 변호사는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었다. 정부가 사시 정원을 동결한 덕분에 변호사 공급이 사건 수요를 따라잡지 못했던 것이다.변호사의 사회적 지위는 김영삼 정권 들어 일대 전환점을 맞는다. '그들만의 리그'인 법률시장 접근성을 높이겠다며 사시 합격자 수를 큰 폭으로 늘리면서다. 사시 정원은 1996년 503명에서 매년 100명씩 늘어나 2004년 1000명을 넘어선 뒤 2009년 로스쿨 도입 전까지 1000대 숫자가 유지됐다. 로스쿨 변호사는 매년 최대 1700명이 배출돼 작년 등록 변호사 수가 약 3만7000명이 됐다. 로스쿨 도입 전에 비해 3배 넘게 증가한 셈이다.현실이 이런데도 로스쿨 경쟁률이 매년 최고치를 경신할 정도로 과열 양상을 보인다. 로스쿨의 수능시험 격인 법학적성시험(LEET) 지원자 수가 올해 사상 처음으로 2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될 정도다. 요즘 변호사들이 죽을 맛이다. 법원과 검찰, 대형 로펌에 들어가지 못한 일반 변호사 대부분이 평균 한 달에 한 건도 수임하지 못해 생활고를 호소하고 있다. 형편이 이러니 시골에서 수임료 덤핑 경쟁이 벌어지고, 일부는 저질 유튜버가 돼 해악을 끼치고 있다.로스쿨은 법조계 구성원의 다양화와 법률서비스 확대라는 취지로 출범했지만, 이처럼 도입 취지와 거꾸로 가고 있다. 변호사가 민폐가 돼가는 현실을 바로잡으려면 저출산과 학령 인구에 맞춰 변호사 정원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로스쿨이 변호사 수만 잔뜩 늘려놓고 국가 발전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올해 지방대 로스쿨 입학생의 95%가 서울대 등 주요 대학 출신인 점만 봐도 상황이 더 악화했다. 20년 전 법조계 명문대 편중 해소와 지역 균형 발전 운운하던 로스쿨 예찬론자들은 뒤늦었지만 반성문을 써야 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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