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일이 드디어 현실로 다가왔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유럽에 이어 아시아 동맹국에 '더 많은 기여'를 주문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한국에 청구서 두 장을 동시에 내밀었다. 하나는 관세, 다른 하나는 방위비 분담금이다. 12·3 계엄 사태 등 정치적 혼란 속에서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된 형국이다.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유럽연합(EU) 국가들이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도록 하는 새로운 기준을 관철시켰다. 이제 그 잣대를 아시아 동맹국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션 파넬 국방부 대변인은 최근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직면한 아시아 국가들이 유럽보다 적은 국방비를 지출하는 건 상식에 반한다"고 밝혔다. 한국의 국방비는 GDP의 2.3% 수준으로, 대부분의 나토 국가보다 높은 편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보는 듯하다. 전략자산 전개 비용, 사이버 방어, 인프라 보호 예산까지 포함한 포괄적 방위비 분담 요구가 현실화하고 있다.게다가 미국은 오는 7월 8일로 예정된 상호관세 유예 종료시점을 앞두고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 기본 10%·추가 15%의 차등 관세를 예고한 상태다. 한국은 관세 유예와 국방비 증액과 관련해 "우리가 결정할 문제"라며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관세 문제는 실무 협의를 통해 일단 유예하되, 정상 외교에서 풀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국방비 증액은 민감한 문제인 만큼 상호 협의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동맹은 경제와 안보, 기술과 산업을 망라하는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을 표방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철저히 실익 중심이며, 동맹국이라 해서 예외를 두지 않는다. 이로 인해 한미동맹은 '가치 기반'에서 '거래 관점'으로 변화 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한국도 국익을 지키면서 동맹의 신뢰를 유지하는 전략적 균형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하고도 유연한 외교, 차분한 정상 간 담판이 필요한 시점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이 주도권을 쥐기 어려운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까닭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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