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6월이다. 헌정 사상 첫 청문회는 그해 6월 26∼27일 이한동 국무총리 후보자를 대상으로 열렸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다. 공직자가 감당할 자질과 도덕성, 정책 능력을 국민 앞에 검증하자는 것이다. 탐관오리(貪官汚吏)가 될 만한 사람을 미리 걸러내자는 취지다.언제부터인가 인사청문회는 요식 행위로 변질됐다. 통과가 목적이고, 검증은 구색에 불과하다. 자료 제출은 불성실하거나 거부되고, 증인 채택은 정치적 다툼 끝에 줄줄이 무산된다. 후보자들은 "청문회 하루만 버티면 된다"는 듯 뻔뻔한 태도로 일관한다. 여당은 방어에만 적극 나서고, 야당은 실질적 검증보다 언론플레이에 집중한다. 결국 청문회장은 무책임한 폭로와 반격이 오가는 공방의 무대로 전락하고 있다. "어차피 임명된다"는 인식이 퍼질수록 그 제도는 국민에게서 멀어질 뿐이다.이번 이재명 정부의 '슈퍼위크' 청문회에서도 이런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닷새간 인사청문회 18건이 예정돼 있지만, 증인은 거의 없고 제출된 자료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보좌진 갑질 의혹에 대한 증인 채택은 여당 반대로 무산됐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가족의 개인정보를 이유로 대부분의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논문 표절과 연구윤리 위반 논란이 불거진 이진숙 후보자는 단 한 명의 증인만 참석한다. 여당은 방어막을 치는데 몰두했고, 야당은 전략 없는 여론전에 머물렀다. 청문회가 제 기능을 상실한 지금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로 공직 후보자는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에선 34명의 공직자가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됐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고위공직자 29명의 임명이 강행됐다. 실효성 있는 청문회를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증인 출석을 의무화하고, 자료 제출 거부 시엔 청문회 연기나 후보 사퇴를 유도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하는 관행도 제한해야 한다. 지금의 인사청문회는 국민의 정신적 스트레스만 높이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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