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사에서 배신은 공식화된 패턴이다. 특히 100년이나 지속된 고려 무신정권(1170~1270년)은 배신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흑역사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이의방은 동지인 정중부에게, 정중부는 휘하의 경대승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어 권력을 쥔 이의민은 믿었던 최충헌에게, 최씨 정권의 마지막 집권자 최의는 수하인 김준에게 피살됐다. 배신자 김준은 양자인 임연에게 목이 달아났고, 임연 일가는 근위대인 삼별초에 도륙당했다.대의명분을 말하는 조선도 배신과 변절이 판을 쳤다. 집현전 동지들을 배신하고 세조 편에 붙어 단종을 사지로 몰아넣은 신숙주, 독립문 현판을 썼다는 반중, 친미파에서 친일파로 변절한 매국노 이완용까지. 민주공화정 이후 박정희는 고향 후배 김재규에게 암살당했고, 전두환은 정치적 아버지인 박정희를 독재자로 몰았다. 노태우는 죽마고우 전두환을 백담사로 보냈고, 이명박은 자신을 키워준 정주영이 대선에 출마하자 김영삼 편에 섰다. 민주투사 김영삼은 내각제를 매개로 군부세력과 손잡더니 정권을 잡자 그들을 감옥에 보냈다.박근혜는 아버지가 총애하던 신군부에 버림받는 걸 목도하고도 측근들에게 배신당하고 탄핵당했다. 박근혜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던 몇몇은 자신을 감옥에 넣은 윤 전 대통령의 참모로 변신하기까지 했다. 그래서일까. 정치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충신'을 꼽으라 하면 십중팔구 전두환의 심복 장세동을 가리킨다. 5공의 경호실장과 안기부장을 지낸 장세동은 전두환이 몰락한 뒤에도 5공 청문회와 12·12, 5·18 내란 재판에서 보스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았다. 친윤들이 검찰에 불려가자 하나같이 윤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고 있다. 탄핵에 찬성한 한동훈을 배신자로 몰면서 '탄핵 기각', 윤 어게인'을 외친 그들이라 황당한 느낌마저 든다. 하긴, 주군이 본을 보이지 않으면 충신이 나오기 어려운 법 아닌가. 윤 전 대통령은 국회에 출동한 비상계엄 병력이 '인원을 끌어내라'는 말을 '의원을 끌어내라'로 잘못 들었다며 지휘관 탓을 했다. 측근들의 표변을 배신과 변절로 재단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윤 전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한다면 사정이 달라질지 모르겠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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