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이 쏘아 올린 K-글로벌 콘텐츠의 저력이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입증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K팝의 특징을 함축한 완성도 높은 음악과 함께 ‘우리 전통문화의 현대적 재현’이라는 요소들이 전 세계 관객들의 공감과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는 요즘이다.지난 2일, 경주에서는 서양 고전 음악에 치중돼 있던 오케스트라 관현악에서, 한국적인 전통 창작 국악곡을 국악오케스트라 연주로 선보여 경주시민과 관광객들을 감동의 현장으로 초대한 음악회가 열렸다. 이번 음악회는 ‘경주시립신라고취대·김천시립국악단 교류음악회 with 아창제’로 국악 창작곡의 새로운 바람을 실어 경주시립신라고취대와 김천시립국악단이 강렬하고 아름다운 연주로 해석해 선보였다. 대한민국 창작 음악의 명맥을 이끌어온 ‘아창제(ARKO한국창작음악제)’가 2025경주APEC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 경북에서는 처음으로 경주예술의전당에서 환호와 감동을 교감하는 연주회를 펼친 것이다.한국적인 정서를 진하게 녹여낸 국악관현악을 한여름의 선물로 펼쳐 보인 음악회는 서양의 클래식을 능가하는 웅장하고 화려한 면모를 통해 만석을 이룬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또 가슴 벅찬 환희와 함께 국악을 향한 자긍심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창제’는 대한민국 대표 창작 관현악 축제로 국악과 양악을 아우르는 창작 관현악 활성화를 위해 추진 중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특성화 브랜드다.
이번 교류음악회에서는 그간 선정된 우수 창작 국악 작품 중 가장 감동적이면서도 이국적인 정서를 녹여낸 수준 높은 작품을 엄선해 아름답고 웅장한 어울림을 전했다는 호평을 얻고 있다.또 경주의 풍성한 문화적 저력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 이번 연주회에는 예술감독과 지휘를 김현호 감독이 맡았으며 노래는 장사익, 가야금 연주는 오해향, 장구는 민영치가 연주했다.이날 프로그램으로는 국악관현악 ‘천마도(제11회 아창제 선정작)’, 가야금산조 협주곡 ‘파사칼리아(제8회 아창제 선정작)’, 설장구 협주곡 ‘오디세이:긴 여행(제6회 아창제 선정작)’, 장사익의 소리 ‘찔레꽃, 꽃구경, 아리랑’, 국악관현악 ‘아브레이수나(제16회 아창제 선정작)’ 등으로 구성됐다.첫 번째 곡인 김기범 작곡의 국악관현악 ‘천마도’는 1973년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에서 강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으로, 전통 회화가 지닌 가치와 고유한 아름다움이 우리 음악을 통해 더욱 강렬하고 깊이 전달했다. 천마도 발굴 당시의 환희와 발굴과정에서의 긴장, 이완, 대립과 소통 등의 다양하고 뜨거운 감정들을 이 곡에 고스란히 녹여내 아름다우면서도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역동성이 벅찬 감동으로 전해졌다.
가야금산조 협주곡 ‘파사칼리아’는 부산무형문화재 제8호 강태홍류 가야금 산조의 선율과 리듬을 바로크 시대의 변주곡 형식인 파사칼리아와 융화해 가야금 선율과 주제 화성들이 정점을 이루며 신선하고 조화롭게 구성됐다.설장구 협주곡 ‘오디세이:긴 여행’은 우리나라 아름다운 산하 풍수를 그리워하며 한국에서 국악을 공부한 재일 동포 3세 민병치가 작곡한 곡으로 국악의 멋과 즐거움을 선보이기 위한 작곡과 연주 이념을 느낄 수 있었다.그가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느낀 설렘과 그리움과 혼돈 등 다양한 감정들을 국악의 멋으로 표현해 심혈을 기울인 이 곡에 담았다. 민영치의 신들린 듯한 설장구 독주에서는 관객들도 연신 추임새를 넣으며 환호와 박수 갈채로 응답했다.
또 ‘찔레꽃, 꽃구경, 아리랑’은 우리 시대 삶과 희망을 노래하는 가장 한국적인 소리꾼 장사익의 열정으로 연주회의 감격을 한층 고조시켜 깊은 감동의 무대를 선사했다.우리 음악을 향한 지순한 사랑을 민족의 정서로 소박하게 녹여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 그는 고요하지만 강인한 힘과 에너지를 지닌 이 시대 최고의 소리꾼임을 증명했다. 마지막 연주곡이었던 국악 관현악 ‘아브레이수나’는 이정호 작곡으로, 예천 통명 모심기 농요인 ‘아브레이수나’와 ‘돔소(도움소)소리’ 선율을 주제로 관현악적 연주 기법과 각 악기의 상호작용 및 공간감 등 음향적 활용을 더하며 국악 관현악의 신비롭고 장엄한 분위기를 전했다.우리 농부들의 애환이 담겨 있는 주문과도 같은 분위기의 이 곡은 관현악으로 점차 고조되면서 신비하고 장엄하게 변주됐다. 이번 공연의 두 축 중에서 경주시립신라고취대는 신라 고대음악의 철저한 고증과 재현을 기반으로 창단된 세계 유일의 문화예술 공연팀으로, 고취 행렬 퍼포먼스부터 현대 창작 음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공연 활동을 통해 지역 문화예술 발전과 시민 문화 향유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또 김천시립국악단은 2001년 창단 이래 김천의 역사와 이야기를 전통 예술로 재구성하며 김천만의 전통 문화 브랜드를 창작하고 기획해 오고 있다. 34명의 단원을 중심으로 악가무(樂歌舞)의 조화를 바탕으로 국악단 특성을 살려 다양하고 우수한 콘텐츠를 담은 새로운 창작, 국악과 기획, 연출 및 현대음악과의 융합을 통해 우리 고유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음악회는 경주시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 공동 주최, 2025APEC정상회의 경주 개최를 기념해 기획한 특별 무대로, 국악창작곡의 대중화와 함께 경주의 문화예술 자산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K-글로벌 콘텐츠의 확장판이 될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창작 국악 관현악곡들이 널리 연주되고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굳건한 발판이 되는 음악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