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팝니다. 원하시는 목적으로 써 주십시오. 저는 27세 남자, 비밀은 절대 보장, 결코 폐를 끼치지 않겠습니다."젊은 독신 남성 하니오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다가 구조돼 목숨을 건진 뒤 신문 구직 면에 이런 광고를 게재한다. 죽으려다 실패한 하니오는 기왕 죽기로 한 몸이니 필요한 사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기로 마음먹는다.첫 의뢰인은 부유한 노인으로, 자신을 배신하고 폭력조직 보스의 여자가 된 젊은 아내를 향한 복수심에 불타고 있다. 이 노인은 젊은 아내와 부정을 저지르다가 의도적으로 보스에게 들켜달라고 하니오에게 부탁한다. 노인의 말대로 하면 틀림없이 죽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하니오는 흔쾌히 의뢰를 받아들인다. 하니오는 여자와 밀회하는 장면을 조폭 보스에게 들키는 데 성공하지만, 뜻밖에 보스는 하니오를 살려주고 얼마 뒤 여자만 시신으로 발견된다.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1925∼1970)의 '목숨을 팝니다'(RHK) 초반 줄거리다. 최근 국내 번역 출간된 이 책은 하니오가 자기 목숨을 내던지는데도 번번이 죽지 않고 살아남는 과정을 담았다. 자살을 유도하는 약의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달라는 도서관 사서, 흡혈귀인 자기 어머니의 연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소년 등 기상천외한 의뢰인들이 연달아 등장한다. 두려움 없이 의뢰를 받아들인 하니오는 매번 살아남는다.이 소설은 기이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벌어져 가벼운 오락 소설처럼 보이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작가가 담아내려 한 사회비판적 메시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작가가 이 소설을 펴냈던 1960년대 후반 일본은 고도 성장기로 차츰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던 시기였다. 동시에 결혼과 가족 구성이라는 획일화된 삶을 권장하는 것을 넘어 은근히 강요하는 풍조가 만연했다.작품 후반부 한 경찰관은 하니오에게 "제대로 된 인간이란 모두 가정을 가지고 열심히 처자식을 부양하는 법"이라며 "자네 나이에 독신이고 주소가 없다면 사회적으로 신용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훈계한다. 이 같은 대화는 입시, 취업, 결혼, 출산 등 사회적 통념대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을 낙오자 취급하는 사회적 풍조를 보여준다. 아울러 이런 사회 분위기에 염증을 느끼는 하니오의 모습은 작가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으로 읽힌다.'목숨을 팝니다'는 미시마 유키오가 1968년 오락성이 강한 잡지 '주간 플레이보이'에 연재한 것으로, 대표작들과 달리 문체와 분위기가 매우 가벼워 작가의 색다른 면을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은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하다가 2015년 '기존의 미시마 유키오를 떠올리기 힘든 괴작'이라는 홍보 문구와 함께 재출간돼 다시 조명받았고, 대형서점 문고본 부문 연간 판매 1위를 기록하며 역주행했다. 화제성과 인기에 힘입어 2018년 일본 드라마로도 방영됐다.미시마 유키오는 빼어난 문체로 아름다움을 한계까지 묘사해 일본에서 '탐미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작가다. 
 
대표작인 '금각사'는 교토 유명 사찰 방화 사건을 다룬 소설로 일본 문학의 20세기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다만 그는 1960년대 중반부터 극우 사상가로 변신했고, 1970년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주장하며 인질극을 벌이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국과 한국에서 많은 이들에게 비판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