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로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에 의해 청구된 구속영장을 “법적 평가와 관련해 다툴 여지가 있다”며 기각하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겼다. 공무원 신화 한 전 총리는 법정에서 명예회복을 할지 고민에 깊어지고 있다. 특검팀은 지난 29일 “윤 전 대통령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헌법 질서를 유린 할 것을 알면서도 헌법적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내란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 한 전 총리는 노무현(333일), 윤석열 정부(1077일)에서 국무총리를 두 번이자 민주화 이후 최장수 총리라는 ‘Mr. 공무원’ 신화로 공직사회에서 존경을 받았다.    그러던 인물이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에 가담·방조한 혐의로 무너졌다. 한 전 총리는 서울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0년 22세 나이로 행정고시 8회에 합격했다. 그 뒤 정통 경제통상 관료로 관세청과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를 두루 거치면서 승승장구했다. 1998년엔 김대중 대통령이 신설한 통상교섭본부 본부장(장관급)에 발탁됐다. 당시 나이 49세였다. 이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경제수석을 역임했다.    그 시절 한 전 총리는 ‘바른생활 맨’으로 통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부터 조간신문을 읽으며 현안을 파악했다고 한다. 회의 전 사무관이 “자료 정리해 드리겠다”고 하면 “이미 머릿속에 있는데요”라 답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노무현 정부 들어 한 전 총리는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현 기재부) 장관을 지냈다. 그러다 2007년 4월 마지막 국무총리에 임명됐다. 당시 국회는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말 지지율 추락과 여당인 열린우리당 집단 탈당 사태로 여소야대였지만 한 전 총리 임명동의안은 77.8% 찬성률로 통과됐다.    노 전 대통령은 한 전 총리를 “참 양종(良種)”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타고난 품성이 우수하다는 뜻이었다. 한 전 총리는 정권이 바뀐 뒤에도 2009년 2월 이명박 정부의 주미대사로 발탁됐다. 그는 한국무역협회 회장을 맡아 10년간 공직을 떠났다가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공직에 복귀했다. 윤 전 대통령이 탄핵 소추되자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가 민주당에 탄핵 소추돼 헌법재판소 기각 결정으로 넉 달 만에 복귀되기도 했다. 유력 대권 주자로 막판까지 경쟁을 벌였던 그가 법원에서 공무원 신화의 명예를 되찾을 수 있을지 안개 낀 거리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신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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