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지방선거의 최대 관전 포인트 중 하나가 대구다. 국민의힘이 공천 내홍으로 보수진영 후보가 2명 또는 3명으로 나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현재 6명이 경선을 치르는 가운데 컷오프된 주호영 의원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무소속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까지 감안하면 최대 4파전으로 치러질 수 있다.1995년 민선 지방자치제 출범 이후 대구에선 단 한번도 민주당 계열에 시장직을 내준 적이 없다. 역대 대구시장 선거 결과는 이변이 없는 '역시나 선거'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대구가 애초부터 보수의 '심장'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인 1728년 이인좌의 난 이후 영남 지역이 '반역향(叛逆鄕)'으로 낙인 찍히면서 대구는 중앙 정계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해방 이후에는 1946년 10월 1일 대구 항쟁이 발생했고, 1960년 2월엔 고등학생 1500명이 자유당 정권에 맞섰다. 2·28시위는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됐다. 그 직후엔 교원노조와 혁신정당 운동까지 움텄다. 대구는 한때 권력에 저항하며 정치적 에너지가 살아 있는 도시였다.이 같은 흐름이 1970년대 이후 급격히 반전됐다. 박정희 정권에 이어 전두환·노태우 정권까지 대구·경북(TK) 기반 권력이 이어지면서 대구는 정권의 핵심 보루가 됐다. 특히 국가 주도 산업화 과정에서 개발 예산이 지역으로 흘러들고, 지역 인사들이 중앙 권력으로 대거 진출하면서 '정권이 잘 돼야 우리도 잘 된다'는 인식이 뿌리내렸다. 부산보다 대구가 더 보수화된 데에는 지리적 특성도 한몫했다. 부산은 항구도시로 외부와 맞닿아 있지만, 대구는 분지형 내륙도시로 변화의 바람이 쉽게 들어오지 못했다. 그 결과, 대구는 보수의 '아성'으로 굳어졌다.지금 대구시장 선거를 둘러싼 상황은 유동적이다. 보수 분열이 끝까지 유지된다면 선거판은 크게 흔들릴 것이다. 성급한 가설이긴 하지만, 민주당이 처음으로 대구에 깃발을 꽂을 수 있을까. 그것이 세간의 관심사다. 대구 민심의 미묘한 변화도 감지된다. 탄핵 국면 이후 보수 진영의 무기력과 '윤 어게인'에 대한 집착이 되레 반감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같은 흐름이 표심의 이동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수면 아래 암류(暗流)가 심상치 않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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