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힘겹게 타결했던 한미 관세 합의가 무색하게도 다시 한번 관세 파고가 밀어닥치고 있다. 미국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한 새 관세 적용 시점이 다음 달로 다가온 가운데 유럽연합(EU)도 다음 달부터 고율의 철강 관세를 부과하기로 해 통상당국이 긴장하고 있다.7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2일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거래를 막지 못한 60개 경제권에서 들어온 수입품에 다음 달께 10% 또는 1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염전 노예, 불법 어업 등을 빌미로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를 효과적으로 시행하지 않은 46개 경제권 그룹에 포함돼 12.5% 관세 부과 대상이 됐다. 나머지 14개 경제권 그룹에는 10% 관세가 적용됐다.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월 상호관세 위법 판결 이후 전 세계 무역 상대국에 부과한 10%의 이른바 '글로벌 관세'가 다음 달 24일로 만료됨에 따라 무역법 301조 카드를 꺼내 들어 대체 관세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USTR은 다음 달 7일 청문회 등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새 관세를 확정할 예정이다.정부는 한국의 관세 부담이 지난해 한미 합의 수준인 15%를 넘지 않도록 방어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지난 3일 화상면담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걱정하지 마라. 당초 합의했던 대로 15%가 그대로 유지되는 과정에 있다'고 얘기했다"며 "만약 15%를 넘어가면 미국이 합의를 깨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301조 조사 결과를 무역 쟁점으로 삼지 않도록 다음 달 6일까지 증빙 자료를 철저히 준비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EU발 관세 악재 역시 다음 달부터 현실화한다. EU는 역내 철강 산업 보호를 위해 다음 달 1일부터 관세를 물리지 않는 철강 제품 수입 물량을 기존의 연간 3500만t에서 1830만t으로 절반 가까이 줄이고, 이를 초과하는 수입 물량에는 현행 25%의 관세를 50%로 2배 인상하는 새 관세 기준을 적용한다. 지난해 기준 EU는 한국 전체 철강 수출의 13.8%(388만4000t)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작년 EU에 약 311만t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적용 대상 철강 제품을 수출한 한국은 이 가운데 258만t은 국가별 할당을 적용받아 무관세로, 나머지 물량에 대해서는 관세 25%를 물었다. EU의 새 관세 기준대로라면 한국의 무관세 할당량은 130만t가량으로 작년에 비해 반토막 수준으로 쪼그라들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서는 50%의 관세 폭탄을 맞게 된다.
잇따른 고위급 접촉에도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철강 업계와 전문가들은 다음 주 예정된 이재명 대통령의 유럽 순방이 EU의 철강 관세 폭탄을 막을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오는 9일부터 18일까지 유럽을 방문하며 9일부터 이틀간 브뤼셀에 머물며 한-EU 정상회담 등을 가질 예정이다.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무역위원장)는 "한국과 EU는 그동안 미국의 일방적인 관세 부과 조치에 함께 대응해 왔다"며 "다른 나라들은 EU와 FTA가 없지만 우리는 한-EU FTA가 적용되고 있고, EU와 협력을 많이 해온 만큼 한국을 다른 국가와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