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용성(金龍成) 이사장 기념비 제막식이 9일 오전 경주시 동방동 산 33-2 중턱에서 법인내 기관장들과 일본 ‘사랑의 회(日本 愛の會)’ 일행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김용성 이사장은 사회복지법인 나자레원, 자선 단, 우봉 복지재단을 설립해 평생을 남다른 희생과 봉사를 해온 사회복지 사업가이다.
김용성 이사장(1918~2003)은 194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고아원과 양로원을 설립·운영하다가 1950년 6·25전쟁 때 경주로 피난와 민제 양로원과 성애원(아동시설), 모자원을 시작했다. 그 후 1972년 민제양로원과 성애원이 경주시 천사2길 22-1(구정동 616-51번지)로 이전하면서 같은 장소에 일본인 부인들의 귀국을 돕기 위한 시설인 나자레원이 시작되었다.
  나자레원에 모여든 일본 부인들은 일제강점기에 유학·징용 또는 노무자로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 남성들과 결혼한 여성들로, 1945년 광복 후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건너온 분들이다. 물론 광복 전에 한국에 살던 일본인 부인들도 있었고, 귀국하지 못한 채 남아있는 분들도 있었다. 한국에 온 일본인 부인들은 남편의 본부인이 있어 쫓겨났거나 남편 고향에서 살 수 없는 경우도 있었으며, 6·25전쟁으로 자녀가 죽거나, 남의집살이, 날품팔이, 농사 등으로 힘겨운 생활을 했다.
  이런 분들이 1972년부터 나자레원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귀국을 원하는 분들의 임시 처소 개념인 ‘귀국자 료(寮)’ 경주 나자레원이 시작되었다. 그 해부터 지금까지 147명의 일본인 어르신들을 일본으로 귀국시켜 드렸으며, 100여 명의 어르신은 나자레원에서 생활하시다가 천국에 가셨다. 얼마 전 마지막 한 분 어르신까지 소천하셔서 현재 나자레원에는 일본인 어르신이 계시지 않는다.
  나자레원이 시작되고 10년 후인 1982년, 일본인 작가 가미사카 후유코(上坂冬子, 1930~2009)가 『경주 나자레원(慶州ナザレ園)』이라는 책을 출간했는데[주오고론샤(中央公論社), 후에 주코분코(中公文庫)], 이 책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일본 신문과 TV를 통해 나자레원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88년에는 다케모토 고노스케(竹本幸之祐, 1928~1989)가 〈나자레 사랑(ナザレ愛)〉이라는 영화를 제작하여 일본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부친이 독립운동 중 청진감옥에서 옥사했음에도 김 이사장은 일본 어르신들을 돌보며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실천한 기독교인으로 일본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그의 이런 활동은 일본 대학의 교재에 실리기도 했다.
  김 이사장이 2003년 3월 15일 소천한 후 현재의 위치에 묘지가 마련되었다. 이후 김 이사장의 묘를 참배하러 오는 일본 단체나 개인들의 추모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는데, 김 이사장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기리기 위해 나자레원 송미호 원장이 오랫동안 준비하여 묘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이 묘비는 다카시로 잇사이(高城一哉)가 중심이 된 ‘사랑의 회(日本 愛の會)’의 협력으로 조성되었다. 이 단체는 2024년 11월 12일 열린 자선단 80주년, 나자레원 52주년, 우봉복지재단 28주년 기념행사에서 경주시의 어려운 학생을 위한 경주 지역인재육성 장학금 500만 원을 기탁했다. 이는 50년 넘게 나자레원 일본 어르신들이 경주시에서 잘 지내온 데 대한 감사의 뜻이 담긴 것이다. 이 단체는 한국의 원폭 피해자를 오랫동안 도와온 단체이기도 하다.
묘 앞에 세워진 묘비에는 김 이사장의 이력과 연혁이 앞 뒷면에 새겨져 있고, 묘 옆 기념비에는 한·일 두 나라의 가교역할을 한 나자레원과 김용성 이사장의 행적을 소개하는 내용이 한글과 일본어로 앞뒷면에 새겨져 있다. 묘비 디자인과 제작은 민아트팩토리 민태연 조각가가 담당했고, 김종욱 사진작가가 도움을 주었다, 외부인 초청 없이 조촐하게 극소수인사만 참석한 묘비 제막식은 김용성 이사장을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는 등 엄숙히 거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