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야당의 선거 무효 주장과 끝없는 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사태수습 방안은 뒷전이고 선관위를 때리느라 여념이 없다. 유권자가 용지가 없어서 돌아가거나 개표 진행 중에 투표하게 된 것은 최악의 참사가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부정선거 의혹을 받던 선관위가 이번 사태로 부정선거 빌미를 제공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여태껏 독립성을 이유로 견제의 사각지대에 있던 선관위이지만 대 수술을 해야 할 시점에 서게 됐다. 선관위의 존폐 필요성을 포함한 철저한 국정조사와 책임 추궁이 있어야 한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 진상규명위원회는 분노에 찬 민심을 헤아려 관련자를 색출해 엄단하고 속전속결로 결판을 내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 것은 선관위만이 아니다. 우왕좌왕하는 정치권이 보여준 행태는 오히려 혼란을 부추길 뿐이다.
사태는 선거 무효로 번져 걷잡을 수 없이 확산일로에 있다. 부실선거의 심각성을 볼 때 '선거 무효 소송' 현실 등장이 무리는 아닌 것 같다.
지금까지 선거소송은 개표 결과가 박빙이라 재검표로 당선자가 바뀔 가능성이 있는 경우 혹은 선거 운동 과정에서 당선자가 불법을 저질렀다고 의심되는 경우에는 낙선자가 '당선 무효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때는 선거 자체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므로 문제될 것 없으며, 소송의 근거가 이유 있다고 판정될 때는 당선자만 바뀐다.
하지만 선거 무효 소송은 전혀 다르다. 단순히 당선자 결정에 오류가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선거 과정 자체에 흠결이 있어서 그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지는 경우 재선거를 해야 한다.
독재정권이 부정선거를 획책하거나 치안이 극도로 불안해서 자유롭게 참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선거를 무효로 해야 할 정도의 하자가 일어나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선관위의 터무니없는 잘못 때문에 이런 소송이 제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난 것이다.
재선거는 그 자체로 국격을 추락시키는 망신이다. 더 심각한 것은 재선거를 통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투표나 개표를 둘러싼 갈등은 극도로 휘발성이 높다. 재선거를 주장하는 시민들과 반대하는 시민들이 거리에서 충돌하는 모습은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성난 민심을 잠재울 수 있는 묘책은 빠를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