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모듈원전(SMR) 최적지로 평가받아 온 경북 경주시가 부산 기장군에 고배를 마셨다. 정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신규 대형 원전 2기는 경북 영덕에, SMR 1기는 부산 기장에 각각 선정됐다.이번 결정은 정부가 탈원전 기조에서 벗어나 원전 확대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한 가운데 나온 결과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고, 특히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기차 등 전력 소비가 큰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원전이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핵심 전원이라는 판단 아래 원전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특히 SMR은 기존 대형 원전보다 규모가 작고, 공장에서 주요 설비를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건설 기간과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래 에너지 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평가받는 이유다.그러나 이번 SMR 후보지 선정 결과를 두고 경주 지역에서는 아쉬움과 함께 적지 않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경주는 국내 원자력 산업의 중심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수력원자력 본사가 위치하고 있으며 월성원자력본부에서는 중수로 4기와 경수로 2기가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한국원자력환경공단, 문무대왕과학연구소 등 원자력 관련 핵심 기관과 시설이 집적돼 있다.뿐만 아니라 경주는 SMR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추진하며 차세대 원자력 산업의 거점으로 도약하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 원전 운영 경험과 전문 인력, 관련 산업 기반을 갖춘 만큼 SMR 실증과 산업화를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는 평가가 많았다.그런 점에서 경주시민들이 이번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신청서를 제출한 이후 국회 정책 토론회를 개최하고, 지역 정치권과 행정이 힘을 모아 유치 활동을 펼쳤지만 결국 근소한 차이로 탈락했기 때문이다.정부는 부산 기장 선정 이유로 기존 원전 인프라 활용과 전력 수요 대응 능력, 송전망 등 기반시설 확보를 들고 있다. 고리원전이 위치한 기장이 원전 관련 시설과 경험을 갖추고 있으며, 수도권과 산업단지의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적합하다는 설명이다.하지만 경주 입장에서는 이러한 설명이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미 오랜 기간 원전을 운영해 온 지역과 비교해 SMR 실증과 산업화를 위한 경쟁력이 어느 곳에 더 있는지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명확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것이다.물론 이번 결과를 단순히 정치적 결정이나 지역 간 경쟁의 결과로만 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SMR 후보지 선정은 여러 기술적·경제적·정책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민과 지역사회가 납득할 수 있도록 평가 기준과 과정이 더욱 투명하게 공개될 필요는 있다.특히 경주는 이번 탈락을 계기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원전 산업 기반이 강하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그것이 곧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연결됐는지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오랜 기간 원전과 함께 살아온 지역 주민들의 피로감과 우려를 얼마나 해소했는지, 미래 원자력 산업에 대한 청사진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제시했는지도 되짚어봐야 한다.기장군이 빠르게 준비하고 지역의 장점을 부각한 점 역시 평가해야 할 부분이다. 결국 산업 유치는 단순히 시설과 기반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준비, 주민 공감대, 미래 비전이 함께 작용한다.SMR 1기 유치는 경주가 놓쳤지만, 경주의 원자력 산업 경쟁력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문무대왕과학연구소와 SMR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기존 원전 인프라와 연계해 세계적인 원자력 산업 중심도시로 성장할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 역시 경주가 가진 역할과 가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SMR 사업 선정 여부와 별개로 경주는 대한민국 원전 산업을 지탱해 온 핵심 지역이다. 그동안 축적된 기술과 경험이 미래 원자력 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과 대책이 필요하다.이번 SMR 선정 결과는 경주에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진정한 경쟁은 한 번의 선정 결과가 아니라 앞으로 누가 미래 원자력 산업의 중심이 되느냐에 달려 있다. 경주가 가진 강점을 다시 모아 세계 속 원자력 중심도시로 도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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