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이 처한 현실 가운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방소멸과 인구감소다. 산업 유치도 중요하고 관광 활성화도 중요하며 복지와 문화 확충도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이 줄고 마을이 비면 모든 정책은 설 자리를 잃는다. 지방소멸을 극복하지 못하는 경북은 결국 성장의 대열에서 밀려나고 지역 공동체의 기반마저 잃을 수밖에 없다. 7월 1일이면 민선 9기가 출범한다. 새로운 임기를 시작하는 경북도지사와 시장·군수들이 가장 먼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이유다.선거 구호와 공약은 다양했지만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사람이 줄어드는 지역을 어떻게 다시 살릴 것인가. 새 단체장들이 임기 초반부터 이 질문을 붙들지 못한다면 경북의 시간은 더 빠르게 비어갈 수밖에 없다. 지방소멸은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니라 이미 읍·면·동의 학교와 시장, 병원과 버스 노선, 빈집과 빈 상가에서 확인되는 현실이다.지방소멸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숫자부터 본다. 인구가 몇 명 줄었는지, 출생아가 몇 명인지, 고령화율이 얼마인지를 따진다. 물론 숫자는 중요하다. 그러나 숫자만 들여다보면 더 근본적인 질문을 놓친다. 사람은 왜 떠났고, 왜 돌아오지 않으며, 무엇이 있어야 다시 살 수 있는가. 지방소멸의 본질은 인구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조건의 문제다.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주의 작은 산악마을 론코 카네베세는 그 질문에 하나의 단서를 던진다. 알프스 자락 발레 소아나 계곡에 자리한 이 마을은 주민 수가 수백 명에 불과하다. 한때 젊은이들은 일자리와 편리한 생활을 찾아 도시로 떠났고 마을에는 고령화와 빈집, 사라져가는 전통이 남았다. 경북의 수많은 농산어촌 마을이 겪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그런데 이 작은 마을에 변화가 생겼다. 인구가 2022년 말 273명에서 2023년 말 315명, 2024년 말 383명으로 늘었다. 출산율이 갑자기 높아진 결과는 아니었다. 같은 기간에도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많았다. 인구 증가의 주요 원인은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 곧 전입과 해외 이주민 유입이었다. 지방소멸의 반전은 아이가 갑자기 많이 태어나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 들어와 살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을 때 시작됐다.이 마을에 정착한 로리스 로나티와 알레시아 보세토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두 사람은 버려진 산간 축사와 초지를 일터로 바꾸었다. 염소 몇 마리로 시작해 젖소와 닭, 거위까지 키우는 작은 산악 축산농장을 일구었다. 이들이 도시의 일자리를 그대로 들고 온 것은 아니었다. 떠난 사람들이 남겨둔 축사, 조부모 세대의 방식, 산과 초지라는 지역 자원을 다시 일거리로 만든 것이다.또 다른 주민 카테리나 모르간도는 지역의 언어와 기억을 일거리로 바꾸었다. 그는 도시 생활을 접고 고향 권역으로 돌아와 지역어와 마을 사람들의 기억, 전설, 생활문화를 기록했다. 이를 바탕으로 걷기 여행과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환경·도보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누군가는 축사를 일터로 만들고 누군가는 사라져가는 말과 기억을 관광 콘텐츠로 만든다. 지방의 일자리는 공장과 산업단지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지역이 오래 품어온 자연과 역사, 생활문화도 충분히 일거리가 될 수 있다.교육도 핵심이다. 이 권역의 작은 산악학교는 복식학급 형태로 운영되지만 전일제 수업과 디지털 장비, 영어와 지역 언어 교육을 통해 아이들을 가르친다. 작은 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다. 아이가 다닐 학교가 있어야 부모가 남고, 부모가 남아야 가게와 버스와 돌봄이 유지된다. 학교가 사라진 마을에 젊은 가족이 들어오기는 어렵다. 작은 학교를 지키는 일은 교육정책이자 인구정책이다.이 변화가 개인의 결심만으로 이뤄진 것도 아니다. 발레 소아나에서는 청년 창업을 돕는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청년이 산악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교육, 멘토링, 사업계획 지원, 네트워크, 재정 지원을 묶어 제공한다. 지방소멸 대응이 단순한 보조금 지급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일을 만들 수 있는 생태계를 갖춰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물론 이 사례를 경북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작은 유럽 산악마을과 경북의 시·군은 역사도 제도도 생활환경도 다르다. 몇십 명의 이동만으로 인구 증가율이 크게 나타나는 작은 마을의 특수성도 있다. 그러나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역을 살리려면 사람을 불러오겠다는 구호보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이유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경북의 단체장들이 새 임기를 시작하며 새겨야 할 대목이 여기에 있다. 출산장려금만으로는 부족하다. 귀농·귀촌 홍보만으로도 부족하다. 대형 산업단지와 관광개발만으로도 모든 마을을 살릴 수 없다. 청년이 살 집이 있어야 하고 아이를 맡길 곳이 있어야 하며 학교가 남아 있어야 한다. 병원과 교통이 연결돼야 하고 지역 안에서 작은 일이라도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국인 주민과 새로 들어온 사람을 일시적 노동력으로만 보지 않고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도 필요하다.지방소멸 대응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촘촘한 생활정책이어야 한다. 빈집을 집으로 바꾸고, 폐교 위기의 학교를 배움의 거점으로 지키며, 버려진 축사를 일터로 살리고, 사라져가는 언어와 기억을 문화자산으로 키우는 일이다. 농촌의 작은 가게, 마을버스, 돌봄센터, 보건지소, 작은 학교 하나가 주민에게는 지역에 남을 이유가 된다.경북의 작은 마을들은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는 공간이 아니다. 산과 들, 바다와 골목, 학교와 시장, 사찰과 옛길마다 다시 살릴 수 있는 자산이 있다. 문제는 그것을 인구 통계의 뒷자리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삶을 다시 세우는 출발점으로 볼 것인가다.새로 취임하는 경북의 단체장들에게 필요한 것은 숫자를 높이겠다는 조급한 약속이 아니다. 사람이 다시 살 수 있는 조건을 하나씩 만드는 집요함이다. 살아남는 마을은 인구가 늘기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사람이 돌아와 살 수 있는 이유를 먼저 만든다. 경북의 지방소멸 해법도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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