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9기 대구·경북 지방정부가 출범했다. 취임식장은 축하와 다짐으로 채워졌지만 지역민의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골목상권 침체, 청년 유출, 산업 전환 지체, 수도권 집중의 벽이 한꺼번에 지역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 단체장들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취임사가 아니라 주민의 삶을 바꾸는 실질 행정이다.이번 취임식에서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들은 경제와 소통, 현장 행정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대구는 경제 대개조를 내세웠고 경북은 경북 대전환과 지방시대를 말했다. 포항은 민생경제 회복과 균형발전을 앞세웠다. 방향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말은 이미 충분하다. 민선 9기는 구호가 아니라 성과로 평가받아야 한다.가장 먼저 붙들어야 할 것은 민생경제다. 지역경제 회복은 대기업 유치나 대형 프로젝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골목상권, 전통시장, 농어업, 중소기업, 자영업이 함께 살아야 지역의 일상이 버틴다. 단체장들은 취임 초부터 민생경제를 행정의 중심에 놓고 예산과 규제, 현장 애로 해결 성과를 주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지방소멸 대응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생존 과제다. 사람이 떠나는 이유는 일자리, 교육, 의료, 교통, 주거, 문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민선 9기 지방정부는 인구정책을 개별 사업이 아니라 모든 부서의 최상위 과제로 삼아야 한다. 청년이 머물 일자리, 아이를 키울 교육환경, 고령자가 안심할 의료와 돌봄, 면 단위 주민도 불편 없이 이동할 교통망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대구경북신공항과 행정통합은 민선 9기 대구·경북의 미래 구조를 좌우할 핵심 의제다. 신공항은 단순한 공항 건설이 아니라 산업, 물류, 관광, 정주 기반을 바꾸는 광역 성장축이어야 한다. 주변 지역의 희생을 당연시하거나 공항경제권의 이익이 특정 지역에만 집중돼서는 안 된다. 행정통합도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라 권한, 재정, 주민 동의, 균형발전의 설계 위에서 추진돼야 한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다.반도체 클러스터와 대규모 첨단산업 투자 구상에서 대구·경북이 소외됐다는 지역민의 박탈감도 민선 9기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국가 핵심 산업의 입지가 특정 권역에 집중될수록 균형발전은 공허한 말이 된다. 대구·경북은 구미 전자산업, 포항 소재산업, 대구 기계·로봇·미래모빌리티, 경북의 에너지·방산 기반 등 첨단산업으로 확장할 토대를 갖고 있다. 그런데도 국가 전략산업 배치에서 계속 밀려난다면 상실감은 구조적 소외감으로 굳어질 수밖에 없다.단체장들은 이 여론을 감정적 반발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정부에는 입지 선정 기준의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고 지역 안으로는 대구·경북이 왜 선택받아야 하는지 설득력 있는 산업지도를 제시해야 한다. 구미의 전자·반도체 소재부품장비, 포항의 첨단소재와 이차전지, 대구의 로봇·AI·미래차, 경산·영천·칠곡 등 제조벨트, 영일만항과 대구경북신공항 물류망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 대구·경북형 반도체 전략은 대형 제조공장 유치에 그치지 않고 설계, 소재부품장비, 전력·용수, 인력, 연구개발, 물류를 아우르는 산업 생태계 전략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대구시와 경북도, 포항·구미·경산·영천·칠곡 등 산업도시는 공동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 상공계, 기업, 정치권이 참여하는 첨단산업 공동전략기구를 만들고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단일한 요구안을 제시해야 한다. 반도체 클러스터 소외론을 정치적 구호로 끝내지 말고 강점과 약점을 냉정하게 분석해 부족한 인프라는 예산으로 채워야 한다. 분노를 정책으로 바꾸는 것이 책임 있는 행정이다.첨단산업 못지않게 경주와 안동의 관광산업도 민선 9기 대구·경북 미래전략에서 빠질 수 없다. 경주는 APEC 이후 높아진 국제적 인지도와 도시브랜드를 일회성 성과로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포스트 APEC 전략을 통해 보문단지와 역사문화유산, MICE 산업, 미래산업 홍보 기능을 연결하고 체류형 국제관광도시로 도약해야 한다. 안동도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종택·서원·정신문화 자산을 단순 관람형 관광에 묶어둘 수 없다. 전통문화와 야간관광, 음식, 숙박, 공연, 축제를 결합해 경북 북부권 체류형 관광산업을 키워야 한다.기초단체장들의 책임도 작지 않다. 주민이 체감하는 행정은 대부분 시·군·구에서 시작된다. 기초단체장은 중앙정부나 광역단체의 예산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지역 자원을 묶고 민간과 협력해 생활 현장의 불편을 끝까지 해결해야 한다. 동시에 민선 9기는 청렴과 통합의 행정이어야 한다. 논공행상식 인사, 측근 중심 행정, 보여주기식 행사, 선심성 예산은 지역을 더 약하게 만든다. 반대 의견을 적으로 돌리지 말고 의회와 언론, 시민사회와 긴장 속에서도 협력해야 한다.대구·경북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민선 9기 4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지역은 다시 도약할 수도 있고 더 깊은 침체로 밀려날 수도 있다. 지역민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 아이들이 떠나지 않는 마을, 늙어도 불안하지 않은 삶, 공정하고 책임 있는 행정이다. 대구경북신공항과 행정통합, 반도체 클러스터 소외 논란, 지방소멸의 위기, 민생경제의 침체도 모두 행정의 실력으로 답해야 한다. 민선 9기의 성패는 주민의 삶이 나아졌는가로 평가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