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 어머닌 큰 항아리 몇 개에 장을 담갔다. 그리고 어머닌 볕 좋은 날만 골라서 항아리들 뚜껑을 열곤 했다. 결혼 할 당시 어머닌 이 된장 항아리들을 필자 신혼집에 보내왔다. 
 
그동안 수차례 이사를 할 때마다 이 항아리들을 신주 모시듯 모시고 왔다. 요즘도 아파트 베란다에 놓인 이 항아리들 속 된장을 먹을 때마다 이젠 고인이 된 친정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을 새삼 느끼곤 한다.
항아리 속에서 수십 년 세월이 흐른 된장이어서 인가. 그동안 제대로 숙성한 탓인지 그 맛이 시중에서 시판되는 장맛에 비할 바가 아니다. 끓이면 끓일수록 고유의 진한 맛이 우러난다. 요즘도 이 된장으로 찌개 및 야채 국을 끓일 때마다 어머니의 또 다른 의중을 헤아려본다. 모르긴 몰라도 어머닌 이 된장처럼 나이들 수록 내면이 무르익는 사람이 되라는 무언의 가르침을 주는 듯하여 왠지 마음이 숙연해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젊은 날에는 참으로 매사 실수와 오류 투성이었다. 미숙한 게 너무나 많았다. 무엇보다 타인을 내 마음처럼 믿곤 했었다. 타인에 대한 그릇된 마음의 잣대 탓에 크고 작은 일로 낭패를 당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수십 여 년 전 일이다. 결혼 후 얼마 안됐을 무렵이었다. 누런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 꿀을 담아 들고는 팔아달라고 하면서 불쑥 우리 집을 찾아온 여인이 있었다. 그 꿀은 강원도에서 자신이 직접 양봉한 토종벌이 만든 꿀이란다. 그 말은 거짓이었다. 가짜 꿀이었다. 여인은 이웃에게도 이 가짜 꿀을 빌미로 돈을 갈취해 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당시 여인 말인즉 강원도에서 우리 집 근처에 있다는 딸집을 찾아 왔는데 연락이 안 돼 돌아 갈 여비가 없단다. 하긴 당시엔 핸드폰도 없는 시대니 여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여인의 말을 전적 신뢰하고 그 가짜 꿀을 비싼 가격으로 산 것은 물론, 동정심으로 차비로 웃돈까지 손에 쥐어줬잖은가.
어찌 보면 참으로 어리숙했다. 그 여인의 말을 단 한 번의 의심도 없이 철석같이 믿었잖은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꿀은 물엿과 설탕을 녹인 후 아카시아 향을 첨가한 내용물이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누군가 어려운 일이 있어서 필자에게 손을 내밀면 이를 차마 뿌리치지 못했다. 심지어 평소엔 오랫동안 연락도 없던 학교 동창이 갑자기 찾아와서는 금전 부탁을 할 때도 이 역시 외면하지 못했었다.
공감 능력이 남다른 탓인지 아니면 어리석어서인지 타인의 어려움 앞엔 항상 마음이 무너지곤 했다. 친구의 딱한 사정을 접하자 남편 모르게 그동안 부어온 적금을 도중에 깨트렸다. 그리고 크다면 큰 액수의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그것도 차용증 한 장 변변히 작성 하지 않은 채였다. 하지만 그 돈은 여태껏 절반도 못 받았다.
또한 문단에 입문해서 일이다. 저서를 발간할 때 편집 및 작품 속 탈자, 오자, 어색한 표현을 살펴봐달라고 부탁해 오는 일이 있었다. 그러면 마치 내일처럼 꼼꼼히 살피곤 했었다. 몇날 며칠 밥숟가락만 놓으면 책상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수백 페이지의 타인 작품 원고와 씨름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책 제호도 지어달라고 하면 오지랖 넓게 지어주곤 했었다.
사실 이때는 상대방에게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다. 순수한 문우지정에 의해서였다. 하지만 자신의 책을 발간 후, “수고했다”라는 인사 한마디 없었다. 하긴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에게도 그 은공을 모르는 세태이니 더 말해 무엇 하랴.
요즘 현대인들은 감사와 감동에 무뎌진 채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자신은 타인을 위하여 물 한모금도 베풀지 않으면서 타인이 베푼 공력 및 친절, 배려는 당연 한 것으로 여기곤 한다. 얼마나 뻔뻔스러운가.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는데 말이다.
사람으로서 제 구실을 못할 때 흔히, “낯이 두껍다” 라고 말한다. 상대방이 겸양과 염치를 모를 때도 이런 말로 평가한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부산 지인 딸 결혼식에 가다가 어느 휴게소에서 겪은 일이 문득 생각난다. 그곳 커피 파는 가게에 한 여성이 당황해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어느 젊은 여인이 초로의 여인 흰 바지에 실수로 커피를 쏟은 것이다.
그러고도 커피를 타인 옷에 엎지른 여인은 미안한 기색은 전혀 없어 보였다. 졸지에 커피 세례를 받은 여인은 바지 하단이 전부 커피로 얼룩 졌다. 하지만 더 이상 젊은 여성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근처 화장실로 떠났다.
이를 보자 젊은 여인 얼굴을 다시금 쳐다보게 되었다. 타인에게 피해를 줬으면 자신의 잘못을 사과 하는 게 도리 아닌가. 그러나 끝내 젊은 여인은 그 말 한마디 없이 자릴 떴다. 여인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살아가면서 얼굴만큼은 결코 두껍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