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이 또 하나의 굵직한 미래산업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광명일반산업단지에 2조 원 규모의 글로벌 AI 데이터센터가 첫 삽을 떴다. 2027년 40MW급 1단계 준공을 시작으로 260MW 규모까지 확장한다는 청사진도 제시됐다. 철강도시 포항이 AI 산업도시로 변신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상징적인 사업이다.AI 시대에 데이터센터는 공장과도 같다. 전력과 서버, 냉각시설이 모여 AI를 학습시키고 산업을 움직이는 핵심 인프라다. 지방도시가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를 유치했다는 점만으로도 의미는 작지 않다.하지만 착공은 시작일 뿐이다.데이터센터는 건물만 세운다고 지역 산업이 살아나는 시설이 아니다. 서버가 들어오고, 기업이 입주하고, 연구개발이 이뤄지고, 인재가 모여야 비로소 산업이 만들어진다. 결국 데이터센터는 '채우는 경쟁'이 더 중요하다.포항은 분명 강점을 갖고 있다. 포스텍과 한동대,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한국로봇융합연구원, 철강과 이차전지 산업까지 AI가 접목될 수 있는 연구와 산업 기반이 전국에서도 손꼽힌다. 제조 AI와 산업 AI를 실증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다.여기에 포항은 배터리, 수소, 바이오, 로봇 등 미래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이러한 산업들과 결합할 때 비로소 진정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제조공정의 자동화와 예지보전, 스마트팩토리, 디지털트윈 기술은 모두 AI 연산 능력을 기반으로 발전한다.최근 세계 각국은 AI 인프라 확보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 일본과 중동 국가들까지 초대형 데이터센터 건립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AI 경쟁력은 이제 소프트웨어만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센터와 전력, 반도체까지 포함한 종합 경쟁력이 되고 있다.국내에서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AI 데이터센터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전력 확보와 통신망, 접근성 등의 이유로 지방이 불리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포항이 대규모 민간투자를 이끌어냈다는 것은 지역 산업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그러나 현실도 냉정하다. 국내 AI 기업 대부분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전문 인력 역시 서울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지방 데이터센터가 단순한 서버 보관시설(콜로케이션) 역할에 머문 사례도 적지 않다.따라서 데이터센터 하나만으로 지역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는 경계해야 한다. 건설 과정에서의 경제효과도 중요하지만, 준공 이후 얼마나 많은 AI 기업과 연구기관이 포항을 선택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이제부터는 '유치'보다 '활용' 전략이 필요하다. AI 반도체 기업,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 데이터 분석 기업, 스타트업이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제 지원과 규제 개선은 물론, 창업 지원과 기술 실증 환경도 함께 갖춰져야 한다.무엇보다 인재가 머무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우수한 연구자가 정착하고 청년 개발자가 창업할 수 있는 환경,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정주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산업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포스텍과 한동대를 비롯한 지역 대학들도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 AI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기업과 공동 연구를 확대하며, 학생들이 졸업 후 지역 기업으로 자연스럽게 취업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행정의 역할도 끝난 것이 아니다. 포항시는 인허가 패스트트랙으로 착공을 지원했다. 이제는 기업 투자와 규제 개선, 정주 여건까지 아우르는 후속 지원이 이어져야 한다. AI 기업은 전력만 보고 오지 않는다.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인지, 연구하기 좋은 환경인지도 함께 본다.특히 전력 공급 안정성과 통신 인프라, 친환경 에너지 활용 방안도 장기적으로 고민해야 할 과제다.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만큼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과 탄소중립 전략까지 함께 마련해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또한 지역 기업들이 AI를 실제 산업 현장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제조 AI 실증사업과 디지털 전환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 데이터센터가 지역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때 시민들이 체감하는 성과도 나타날 것이다.포항은 철강으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었고, 이제는 이차전지와 바이오, 수소에 이어 AI라는 새로운 성장축을 세우려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산업 하나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산업과 AI를 융합해 새로운 경쟁력을 만드는 일이다.2조 원이라는 투자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이다.착공식은 하루로 끝나지만 산업 생태계는 수십 년을 바라보고 만들어야 한다. AI 데이터센터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기업과 연구소, 스타트업, 청년 인재가 모여드는 혁신 플랫폼으로 성장할 때 비로소 이번 투자의 가치는 완성될 것이다.포항이 대한민국 AI 산업의 새로운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아니면 또 하나의 대형 시설에 머물지는 앞으로 5년, 10년 동안의 정책과 실행력에 달려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화려한 착공식보다 데이터센터 이후를 준비하는 치밀한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