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옆자리 승객은 음악을 듣고 있는데 나에게만 안내방송이 들린다. 박물관에서는 특정 전시물 앞에 선 사람에게만 설명이 전달된다.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것 같던 ‘나만 듣는 소리’ 기술이 현실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포스텍 연구팀이 소리를 레이저처럼 좁고 곧게 보내 특정 위치에만 들리게 하는 초지향성 스피커를 개발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21일 게재됐다.일반 스피커의 소리는 물결처럼 사방으로 퍼진다. 벽이나 담장 너머에서도 사람 목소리가 들리는 이유다. 반면 빛은 손전등이나 레이저처럼 원하는 방향으로 모아 보낼 수 있다.연구팀은 ‘소리도 빛처럼 한 방향으로만 보낼 수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기존에도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초음파에 음성이나 음악을 실어 특정 방향으로 보내는 기술은 있었다. 그러나 좁은 범위에 또렷한 소리를 전달하려면 수십~수백 개의 초음파 발생 장치를 정교하게 배열하고 각각 제어해야 했다. 장비가 크고 복잡한 데다 제작 비용도 많이 드는 문제가 있었다. 하나의 초음파 장치만 사용하는 방식도 개발됐지만, 스피커 진동판이 떨릴 때 불필요한 진동까지 발생하면서 소리가 옆으로 새는 한계가 있었다.포스텍 연구팀은 하나의 초음파 스피커 앞뒤에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두 종류의 메타물질을 결합해 문제를 해결했다. 장치 앞쪽에 설치한 ‘음향 메타표면’은 소리를 한곳으로 모아 주는 렌즈 역할을 한다. 진동판에서 고르지 않게 발생하는 초음파를 가지런히 정리해 레이저처럼 좁고 곧은 소리 빔으로 만든다. 뒤쪽에 부착한 ‘탄성 메타유닛’은 일종의 소리 방음벽이다. 스피커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진동을 억제해 소리가 옆이나 뒤로 새는 것을 막는다. 앞에서는 소리를 모으고 뒤에서는 잡음을 차단하는 이중 장치를 적용한 셈이다.연구팀은 이 기술을 이용해 하나의 초음파 소자만으로 500㎐에서 10㎑까지 4옥타브가 넘는 음역을 원하는 방향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사람의 목소리와 음악 등 일상에서 듣는 소리 대부분을 포함하는 범위다. 비행기 좌석을 가정한 실험에서도 효과가 확인됐다. 좌석별로 서로 다른 안내방송과 음악을 들려주고 방향에 따른 소리 크기를 측정한 결과, 탄성 메타유닛을 부착한 뒤 옆으로 새는 소리가 뚜렷하게 줄었다.제작 방식도 비교적 간단하다. 두 메타물질 구조를 3D 프린터로 만들 수 있는 조립식 형태로 설계해 좌석 간격이나 설치 각도, 사용 공간에 맞게 구조를 변경할 수 있다. 기술이 상용화되면 항공기와 기차에서 승객마다 다른 안내방송이나 콘텐츠를 들려주고, 자동차에서는 운전석과 조수석, 뒷좌석에 각각 다른 소리를 제공할 수 있다. 영화관이나 전시장, 확장현실 기기 등에서도 개인별 음향 공간을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다.연구를 이끈 노준석 포스텍 교수는 “메타물질과 초음파 장치를 하나로 설계해 비용과 복잡성, 설계 자유도의 한계를 동시에 해결했다”며 “메타물질을 실제 작동 장치에 적용해 실용화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이번 연구는 포스텍 노준석·문원규 교수와 김웅지 박사, 오범석 박사과정 연구팀이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