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요협(1833~1909)은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을 지내고 동아일보와 고려대학교를 창립한 김성수와 삼양그룹의 모태인 삼양사를 설립하여 우리나라의 산업발전에 큰 공을 세운 김연수의 친할아버지이다.
그는 1833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부안군의 부호 정계량의 무남독녀와 결혼해 처가의 재력을 바탕으로 후일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결혼 후 김요협은 40세의 나이로 고종 9년인 1872년 선공감 감역으로 관직에 올라 1888년 화순군수로 부임하고 첨지중추부사를 지냈다.
김요협이 죽고 그의 아들 김명환은 아버지 묘를 쓰기 위해 인근의 지관들에게 명당자리를 부탁하였고, 지관은 마침 자리가 있기는 한데 암자 자리라는 말에 그는 선뜻 재산의 반을 절에 기부하고 그곳에 아버지를 모셨다고 한다. 자리를 소개해준 지관에게도 5대를 책임지기로 했다하니 얼마나 명당에 집착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울산 김씨들은 재산을 내놓아도 그 명당의 발복으로 그 이상의 재산이 들어온다고 믿는 집안이었다. 그의 묘소는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 뒤 옛 백련암 자리였는데 당시 유명 지관이었던 홍성문 대사가 소점한 자리라고 한다.
옛부터 사대부나 재력가 집안에서는 풍수를 중요시하지 않는 집안이 없었지만 인촌가 만큼 풍수를 신봉하는 집안도 흔하지 않았다. 호남지역의 유명한 명당은 거의 인촌 집안이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증조부모와 조부모 묘소를 비롯한 대부분이 풍수적 명당 길지에 자리하고 있다.
이런 연유인지는 몰라도 인촌 김성수 선생은 아홉 아들을 두었는데 큰아들 김상만은 동아일보 사장을 했고, 김상흠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인촌의 동생 김연수 선생은 일곱 아들을 두었는데 김상협은 국무총리를 역임했고, 김상홍은 삼양사 회장이었다. 이 때문에 요즈음 발행되는 풍수 답사서 치고 인촌 선생 생가와 조상 묘를 언급하지 않은 책이 없을 정도이며 전국의 풍수 학인들이 필수적으로 답사하는 코스다.
이곳의 산세는 호남정맥인 순창군 내장산(763m)에서 서쪽으로 뻗어 나간 지맥이 고창군 방장산(733.6m)을 지나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와 장성군의 구황산(499.8m)을 일으킨다.
여기서 또다시 서북쪽으로 뻗어 올라온 지맥이 고창군의 왕재산(150m) 그리고 청룡산(315m)과 개이빨산(346m)을 거쳐 선운산을 일으키고 이 봉우리가 본 묘소의 현무봉이다.
김요협의 묘소는 선운산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자락의 끝지점인 용진처에 모셔져 있고 좌우 청룡·백호가 포근하게 감싸주니 장풍국을 이룬다.
특히 좌청룡은 혈장을 완전히 감싸주고 있어 후손들에게 귀의 발복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암시해주고 있다. 또한 정면으로는 4개의 봉우리가 구슬처럼 이어져 있는데, 그 형태가 아름다워 이 또한 부귀의 발복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이곳의 수세는 좌선룡에 우선수로 합법하고 특히 청룡 하수사가 길게 뻗어 혈장 앞의 물을 거수해주니 최고의 수세 조건이다.
풍수가에서는 이곳을 꿩이 숲속에 엎드려 있는 복치혈(伏稚穴)의 명당이라고 한다. 선운사를 중심으로 사방팔방에 아름다운 귀봉들이 솟아 있어 마치 큰 나무숲 속에 꿩이 엎드려 있는 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