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른다. 그럼에도 타인의 사소한 그릇됨마저도 용납 못한 채 이를 비판하기 예사였으니, 필자역시 인격 수양이 덜 된 셈이다. 그러나 요즘은 뒤늦게 철이 들었다고나 할까? 타인의 잘못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곤 한다. 그래서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일이 빈번하다. 그동안 이렇듯 성숙하지 못한 내용 들을 일기로 적음했었다. 올해는 일기 대신 미숙한 언행을 경계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나만의 기도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이 기도서는 비록 중세 시대에 나온 『채식 필사본』엔 미치진 못한다.    하지만 서툰 그림 솜씨를 발휘, 올 한 해 동안 사용할 기도서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것을 제작하고 보니 지난날처럼 인생행로(人生行路)에 헛발질을 하는 일이 다소 줄어든 듯하다. 『채식 필사본』이란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 펜으로 직접 글을 쓴 후 그림으로 장식한 책을 의미한다. 이런 필사본은 고대부터 존재했다. 중세 시대에 이르러선 이 필사본이 미적 감각까지 갖춘 형태로 발전 했다. 고대 것과 달리 중세의 ‘채식 필사본’은 아름다운 글씨와 그림으로 만들어져서이다.    이 때 ‘채식 필사본’은 처음엔 수도원에서 주로 성직자들을 위해 제작했다. 13세기에는 일반인들도 도시의 공방에서 이를 만들 수 있었다. 이런 기도서 중 가장 아름다운 『채식필사본』은 15세기 플랑드로 출신 랭브로 형제가 공동으로 제작한 『베리 공작의 호화로운 기도서』이다. 필자가 직접 만든 채식 필사본은 이것처럼 제대로 미감(美感)을 갖추진 못했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지켜야 할 일들과 경계할 일들에 대한 내용이 주류이다. 또한 주제에 따른 내용에 그림을 곁들여서 읽는 재미를 더하였다.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올해 1월 초이다. 그 기도서 중에는 월별 및 계절 별로 유의할 사항과 평소 조심할 언행, 도리 등을 적었다. 무엇보다 이것의 효용가치는 가슴에 헛된 욕망이 차오르거나 정도(正道)를 벗어나서 외도(外道)를 걸을 때 한껏 채찍질을 해주는 점이다. 우리가 사람답게 행할 처세는 무수히 많다. 그 중에서 언어를 손꼽을 수 있다. 말은 경청도 중요하지만 발설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래야 실언 및 타인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 없다. 무심코 내뱉은 무수한 말 가운데, 남에게 심각한 생채기를 내는 것도 있기 마련이어서이다. 육체에 입힌 상처는 병원 치료와 약으로 어느 정도 완쾌될 순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말 한 마디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세월이 흐를수록 덧나곤 한다. 소심한 성격의 필자는 그 상처의 아픔이 매우 오래간다. 삶을 살며 타인이 행한 언행으로 인하여 크고 작게 마음의 상처를 받은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 중에서 지인이 건넨 말 한마디가 아직도 가슴 속에 쓰라린 상처로 남았다. 작년 8월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며칠 안돼서 일이다. 오랜만에 그녀는 전화로 어머니의 안부를 물어왔다. 8월 초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말하자 연세가 어찌됐느냐고 묻는다. 90세라고 답하자, “ 90세이면 살만치 살았네. 돌아가실 연세네.” 라고 말한다. 이 말에 당시 안 그래도 어머니의 별세로 상심과 충격에 빠진 필자로선 더욱 슬픔이 가중되는 기분이었다. 자식은 아무리 부모가 고령이어도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게 인지상정이다. 죽음이라는 게 꼭 나이를 정해 놓고 찾아오는 게 아니잖는가. 그 때 비탄에 젖은 필자를 위로해 줄 양이라면, “얼마나 슬프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라는 이 말이 더 예의가 아니던가. 이 일이 있은 후, 그녀와의 정이 차갑게 식었음을 느꼈다. 이렇듯 말 한마디가 그토록 두텁던 정을 단칼에 끊게 하고 등을 돌리게 한다. 경험으로 이를 터득한 필자는 오늘도 『채식필사본』에 적힌, “ 항상 입안에 세 번 침을 삼킨 후 말을 발설 하라”라는 어린 날 어머니의 밥상머리 말씀을 의미 깊게 되뇌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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