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마당을 산책하다가 이상한 게 눈에 뜨입니다. 조경용으로 심어놓은 단풍나무 둥치에 매달려 있는 게 무엇인가 싶어 가까이 가서 살피니 아하! 매미들이 우화(羽化)하면서 남긴 껍질들이 매미 형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주변의 다른 나무들에도 한결 같이 서너 개의 허물이 나무에 붙어 있습니다. 
 
어쩐지 근래 와서 매미 소리가 요란하다 싶었는데 이 허물 하나하나가 매미가 되어 나무그늘에 숨어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매미는 ‘매암매암’ 소리를 내며 운다고 해서 ‘매아미’로 불리다가 근세어에 와서 ‘매미’가 되었습니다. 알에서 굼벵이로 깨어나 땅속에서 몇 년 동안 때를 기다리며 몸집을 키우다가 땅 위로 올라가 허물을 벗고 어른 매미가 되어서는 고작 한 달도 다 못 채우고 수명이 다합니다.
옛날의 유학자들은 매미가 선비의 덕목을 지녔다고 해서 곤충 중에서는 드물게 숭상했다더군요. 나무의 수액만 먹고 살아 깨끗하고(청, 淸), 곡식을 축내지 않는 염치가 있으며(염, 廉), 살 집을 따로 짓지 않는 검소함을 지니고(검, 儉), 계절에 맞춰 올 때와 갈 때를 지키는 믿음이 있다(신, 信)고 생각했다 합니다. 
 
또 유충으로 오래 땅속 어둠 속에 살다가 매미가 되어 한여름을 치열하게 울고 간다는 점을 사람이 오랜 시간 고생하며 꾸준히 노력을 쏟아 부은 끝에 비로소 각광을 받고 열정적으로 일에 몰두하는 것에 빗대기도 합니다. 
 
반대로 흔히 ‘개미와 베짱이’로 알려진 우화가 원래 그리스어 제목은 ‘개미와 매미’라고 하며, 부지런한 개미와 대조되는 허랑방탕한 존재로 그려 교훈을 주었다고 합니다.
허물이라는 낱말은 위의 경우처럼 ‘생물이 자라면서 벗어놓은 껍질이나 낡은 피부’란 의미로도 쓰이지만 ‘사람이 일상에서 저지른 실수나 부족한 점이나 잘못’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관용적으로 ‘허물이 많다, 허물을 덮다’처럼 쓰입니다.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히 국어사전에는 이 두 ‘허물’이 한 단어가 아니라 동음이의어로 항목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인격 형성에는 두 번째 ‘허물’이, 그 인격이 자라고 성장하는 데는 첫 번째 ‘허물’이 연상됩니다. 다음 문장은 법구경(法句經)의 한 구절입니다.
-남의 허물을 보지 말라. 남이 했건 말았건 상관하지 말라. 다만 나 자신이 저지른 허물과 게으름만 보라.
다른 사람의 언행을 옳다느니 그르다느니 판단하는 것은 자신의 인격 형성에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남의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잘못을 고쳐나갈 때 참된 인격이 갖추어진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곤충이든 파충류든 탈각(脫殼), 또는 탈피(脫皮) 과정을 거쳐야 생체의 부피가 더 커지고 성체로 성장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은 매우 고되고 위험한 과정이라더군요. 탈피에 실패한 경우에는 기형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한답니다. 그렇지만 탈피를 하지 않으면 성장을 할 수가 없으니 목숨을 걸고라도 해야 하지요.
우리들은 어떤가요?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생명을 거는 위험도 감내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언행이 바른 길을 벗어나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만 남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고, 자신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지적하고 가르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의 허물을 지적하는 것은 수용하지 못하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는가요?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에게서 들은 말입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사랑한다는 말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 쓰지만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은 잘 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그런 기초예절은 학교도 교육할 책임이 있지 않냐고 반문하니, 일상적 가정생활에서 소홀하게 여긴 것들은 학교에서 가르쳐도 인성으로 스며드는 것이 쉽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귀감으로 보고 배우는 어른사회가 언제부턴지 부끄러워해야 할 일에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도덕적 불감증을 보이는 사회 분위기도 아이들의 잘못된 성장 태도에 한몫을 거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지 않습니까? 자신에게 허물이 있다면 그 허물을 벗고 한 걸음 성장할 줄 아는 어른이 많은 사회라면 그걸 보고 자라는 세대도 성장을 위한 아픔을 감내할 힘을 갖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