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양갱의 '연'을 무슨 뜻이라 생각하십니까. 흔히 '연하다'의 연, 그러니까 부드러운 양갱이라는 뜻으로들 아십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이 연은 부드러울 연(軟)이 아니라, 개어 졸인다는 연(煉)입니다.    팥을 삶아 곱게 내린 뒤 거기에 한천을 녹여 붓고, 약한 불에서 오래 졸여 굳힌 것이 바로 연양갱이지요. 맛이 아니라 만드는 법을 가리키는 이름인 셈입니다. 한천을 적게 넣어 말랑하게 굳힌 여름 양갱을 따로 물양갱이라 부르는 것을 보면, 이름 하나에도 조리의 내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양갱과 식감이 비슷한 음식이 여럿 있습니다. 하리보 같은 젤리, 부드러운 푸딩, 탱글한 곤약, 그리고 양갱. 하나같이 말랑하고 탱탱해서 입안에서 씹는 느낌마저 서로 닮은 탓에 재료도 비슷하려니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넷은 굳는 원리부터 저마다 다릅니다. 둘씩 짝을 지어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먼저 젤리와 푸딩입니다. 젤리는 젤라틴으로 굳히는데, 이 젤라틴은 동물의 껍질과 뼈에서 나온 콜라겐, 곧 단백질입니다. 곰탕이 식으면 국물이 말갛게 엉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푸딩은 조금 달라서, 우유와 달걀의 힘으로 굳습니다. 굳히는 재료는 서로 다르지만 결과는 닮았습니다.    두 음식 모두 단백질과 지방, 당이 전부일 뿐 섬유질은 거의 없어서, 위와 소장을 지나는 동안 대부분 흡수되고 맙니다. 대장의 미생물에게 돌아갈 몫은 남지 않는 것이지요. 맛은 좋아도, 장 속 식구들과는 인연이 없는 간식인 셈입니다.다음은 곤약과 양갱입니다. 곤약은 곤약감자에서 얻는데, 글루코만난이라는 성분이 물을 잔뜩 안은 채 굳습니다. 글루코만난은 단백질이 아니라 섬유질이어서 다이어트 식품입니다. 양갱도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한천으로 굳히고 팥으로 속을 채우는데, 한천도 섬유질이요 팥도 섬유질입니다.    그래서 이 둘은 위와 소장에 붙들리지 않고 대장까지 곧장 내려갑니다. 다만 곤약이 주로 반찬이나 다이어트식으로 상에 오른다면, 달게 즐기면서 섬유질까지 챙길 수 있는 간식은 아무래도 양갱입니다.그렇다면 한천은 대체 무엇일까요. 한천은 바다에서 옵니다. 우뭇가사리 같은 홍조류를 푹 끓여 그 즙을 식히면 말갛게 굳는데, 이것이 바로 우무, 우뭇묵입니다. 여기서 물기를 빼고 말리면 한천이 되지요. 옛사람들은 이 일을 겨울에 했습니다.    우무를 밖에 널어 밤에는 얼리고 낮에는 녹이기를 여러 날 되풀이하면, 물기와 잡맛이 빠지면서 잘 마른 한천만 남습니다. 자연이 대신 해 주는 동결건조인 셈입니다. 젤라틴과 달리 한천은 상온에서도 단단히 굳는 성질이 있어 무더운 여름에도 좀처럼 무르지 않습니다.우리 몸의 소화효소는 한천의 섬유질을 자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천은 흡수되지 못한 채 거의 그대로 대장까지 내려가는데, 소화되지 않고 이렇게 끝까지 가닿는 것이 바로 섬유질이지요. 우리가 미처 삭이지 못하고 남긴 이 섬유질을 장내세균이 받아먹고 발효시켜, 짧은사슬지방산이라는 물질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이 대장 세포에 힘을 불어넣으니, 장 안이 편안해지면 그 덕은 돌고 돌아 우리 몸으로 되돌아옵니다. 재미있는 것은 해조류를 오래도록 먹어 온 사람의 장에는 이 한천을 능숙하게 다루는 세균이 아예 터를 잡고 산다는 사실입니다. 오래된 밥상 하나가 장 속 세균의 살림살이까지 길들여 놓은 셈이지요.그러니 한천은 그저 굳히는 재료가 아니라 몸에 이로운 섬유질입니다. 열량은 거의 없으면서도 포만감을 안기고, 장이 부드럽게 움직이도록 거들기도 합니다. 게다가 양갱은 한천과 팥이라는 두 가지 섬유를 한 번에 안기니, 바다의 섬유질과 밭의 섬유질이 한 조각에 나란히 담기는 셈이지요.    다만 양갱에는 설탕이 적지 않게 들어 있으니, 한꺼번에 많이 먹기보다 한 조각씩 아껴 즐기는 편이 좋겠습니다. 말랑한 간식이라 하여 다 같은 간식은 아닙니다. 다음에 양갱을 한 조각 드실 때에는, 내 장 속 작은 식구들에게도 조촐한 상을 차려 주는 일이라 여겨 보시면 어떨까요. 달고 부드러운 양갱 한 조각이 생각보다 속이 깊은 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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