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2차 이전의 핵심은 ‘어디에 얼마나 나눠줄 것인가’보다 ‘어디에 모아야 그 기능이 제대로 살아나는가’에 있다. 지난 14일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공공기관 2차 이전의 원칙을 분명히 했다.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면 혁신도시로 이전하되, 기관 하나만 내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앵커기업과 연구기관이 함께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집적화하겠다는 것이다. 나눠주기식 분산 배치로 균형발전의 효과를 충분히 거두지 못했던 1차 이전의 교훈을 생각하면 타당한 방향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집적의 단위는 무엇인가. 장관이 말한 집적화의 본뜻은 이전기관이 산업과 연구, 인력과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 있다. 그렇다면 집적의 기준은 ‘어느 도시에 모아 놓느냐’가 아니라 ‘어떤 기능과 산업, 현장에 결합시키느냐’가 되어야 한다. 도시를 기준으로 삼으면 집적은 ‘건물의 밀집’으로 끝날 수 있지만, 기능을 기준으로 삼으면 산업·연구·인력이 연결되는 ‘생태계의 완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주를 보자.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와 월성원전, 중저준위 방폐장, 문무대왕과학연구소가 있고 SMR 국가산업단지가 추진되고 있다. 연구개발에서 발전, 방폐물 관리, 차세대 원자로까지 원자력 전주기를 연결할 수 있는 기반이 한 권역에 집적돼 있다. 원자력 안전과 에너지 소통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이 현장과 결합해야 한다면 경주는 유력한 입지가 될 수밖에 없다. 국가유산 분야도 마찬가지다. 신라왕경 핵심유적과 세계유산이 밀집한 경주는 국가유산의 보존·활용·전승을 현장과 연결할 수 있는 대표적인 도시다. 양성자가속기 역시 신소재 연구와 실증 기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국가 연구기반이다. 혹자는 경주가 혁신도시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원칙의 예외를 요구하는 것이냐고 물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 경주 배치는 원칙의 예외가 아니라 원칙의 구체화다. 기존 기관과 연구시설, 산업이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는 집적화의 취지는 이들 기능에 관한 한 경주에서 더욱 잘 구현될 수 있다. 김천혁신도시와 경쟁하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교통·물류·행정 기능의 집적은 김천이 맡고, 원자력 안전과 국가유산, 가속기 실증처럼 현장을 떠나서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전문 기능은 경주가 맡는 기능분담이 필요하다. 경북 내부의 제로섬 경쟁이 아니라 김천과 경주가 서로 다른 강점을 살려 경북 전체의 유치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이어야 한다. 기능적 적합성만으로 이전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함께 내려와 정착할 수 있는 기반도 필요하다. 경주역은 경부고속선과 중앙선, 동해선이 만나는 철도 결절점으로 KTX를 이용하면 수도권과 두 시간대에 연결되고, 포항경주공항도 접근성을 보완한다. 경주역을 축으로 6천여 세대 규모의 역세권 신도시가 조성되고 있어 정주기반도 빠르게 확충되고 있다. 동해선으로 연결된 경주와 포항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본다면 포스텍과 한동대, 동국대를 비롯한 교육 기반과 동국대 경주병원 등의 의료 인프라도 활용할 수 있다. 정주가 왜 중요한지는 1차 이전의 경험이 보여준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한 혁신도시의 이전기관들이 가족을 동반하지 않은 직원들의 수도권 통근을 위해 셔틀버스에 지출한 예산이 356억원에 이르렀다. 기관의 기능과 무관한 곳에 청사만 옮겨 놓으면 직원은 몸만 내려오고 삶은 수도권에 남을 수 있다. 반대로 기관의 기능이 지역의 산업·연구 기반과 결합하고 주거·교육·의료 여건까지 뒷받침된다면 가족이 함께 정착할 조건도 좋아진다. 경주가 정주 패키지를 유치전략의 한 축으로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학교와 병원, 문화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이전기관 가족뿐 아니라 지역의 청년과 시민이 함께 누리는 자산이 된다. 기관 유치 여부와 관계없이 도시에 남는 투자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경상북도의 유치전략에도 이미 경주의 자산이 반영돼 있다. 도가 내세우는 에너지·원전 안전 기술의 실증 연계는 경주의 SMR 국가산업단지와 문무대왕과학연구소, 양성자가속기를 중요한 기반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경주의 제안은 도의 전략에 새로운 항목을 더하자는 것이 아니다. 경북이 이미 그려놓은 전략에 가장 적합한 착지점을 구체화하자는 것이다. 2차 이전의 성패는 몇 개 기관이 어느 도시로 갔느냐가 아니라, 이전한 기관이 그 자리에서 제 기능을 얼마나 키웠느냐로 평가돼야 한다. 기관의 정책과 기능이 현장에서 성장하고 그 성과가 대한민국 전체로 확산되는 것, 그것이 균형발전의 본령이다. 집적의 기준도 도시가 아니라 기능에 두어야 한다. 그 기준에서 보면 경주는 배분을 기다리는 도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원자력 안전과 국가유산 행정, 연구·실증 기능이 더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현장이다. 공공기관 이전의 기준이 배분이 아니라 기능이라면, 경주를 예외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해답으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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