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공지능(AI) 산업을 이끄는 빅테크 수장들이 잇달아 AI 개발 속도 조절론을 꺼내 들면서 우리나라 AI 산업에도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안전성과 신뢰성이 AI 경쟁의 핵심 기준으로 떠오르면 후발주자인 국내 기업에는 검증 역량을 경쟁력으로 키울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빅테크가 주도한 안전 기준이 국제 규범으로 굳어질 경우 또 다른 진입장벽이 될 수 있어서다.국내 업계에서는 일률적인 감속보다 AI의 활용 분야와 위험 수준에 따른 차등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역시 국제적인 AI 안전 규범 설계에는 적극 참여하면서 제조·산업 현장 등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진 실용 AI의 경쟁력을 키우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2일(현지시간) 개인 블로그에 AI가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발전하는 '재귀적 자기개선'(recursive self-improvement) 단계에 진입했다며 "프론티어 AI 모델의 개발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놨다. 이 같은 주장에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일론 머스크 xAI CEO,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공동창업자도 동조하면서 미국 빅테크를 중심으로 AI 개발 속도 조절론이 빠르게 확산하는 분위기다.국내 AI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속도 조절의 대상과 범위다. 속도 조절론 자체는 단순한 AI 개발 중단이 아니라 안전성 검증 체계를 갖추자는데 방점이 찍혀 있어, 향후 국제적 안전 기준이 어떻게 설계되느냐에 따라 국내 기업에 미칠 영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아모데이 CEO의 제안처럼 민주주의 국가 간 공동 기준 수립과 글로벌 공조가 현실화하고, 빅테크가 주도하는 안전 기준이 국제 규범으로 자리 잡으면 국내 기업에도 이를 충족해야 하는 부담이 생길 수 있다.반대로 안전성과 신뢰성이 AI 경쟁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는다면 국내 기업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얼마나 빠르게' 개발하느냐보다 '얼마나 믿을 수 있게' 개발하고 활용하느냐가 중요해지면 안전성 검증 역량 자체가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빅테크와 같은 속도로 범용 인공일반지능(AGI) 개발 경쟁을 벌이기보다 자체적인 강점을 살려 다른 방식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AI 개발 속도 조절론이 국제적인 안전 규범 논의로 확대되면 정부의 전략적 판단도 한층 중요해질 전망이다. 미국은 이미 반도체 수출 통제 과정에서 안보 동맹과 첨단 기술 거버넌스를 연계해 왔다. 이에 따라 AI 안전 분야에서도 동맹국을 중심으로 공동 대응을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아모데이 CEO가 인정했듯 중국이 참여하지 않는 속도 조절은 서방 진영만의 자기 제약에 그칠 수 있다. 한국 기업 역시 중국 시장과의 연결 고리를 완전히 끊기 어려운 만큼 국제 공조의 범위와 수위를 신중하게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국내 업계에서는 국제적인 AI 안전 표준 마련에는 적극 참여하되 국내 산업 육성 기조는 유지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AI 안전 담론과 규범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에는 만들어진 규칙을 수용하는 쪽이 아니라 설계에 참여하는 쪽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며 "규범 설계 단계부터 다양한 규모의 기업, 개발자 및 연구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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