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는 귀띔 없이 갑자기 가을 날씨가 찾아왔습니다. 예전에 비해 계절의 변화가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계절 변화는 겨울 끝 무렵 태양이 천천히 공기를 데워 봄을 부르고, 자리를 내주기 싫은 여름이 머뭇대는 동안 가을이 슬그머니 잠복해서 초목(草木)의 푸른 서슬에 힘을 빼놓으면서 가을이 깊어갔습니다.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 기후는 우리나라의 자랑거리 중 하나였지요. 근래 몇 년 사이 봄도, 가을도 짧아지고 계절 간의 낙차가 매우 커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펄펄 끓던 날씨가 하룻밤 사이에 창문을 닫고 잠자리에 들 정도로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가을이 왔습니다.
비록 영상으로 만나긴 했지만 며칠 전 한강변에서 열린 서울 불꽃 축제가 가을밤에 화려한 색과 빛을 입혀 색다른 운치를 더해주더군요. 형형색색의 불꽃들이 검은 밤을 화폭 삼아 그리는 아름다운 그림을 영상으로 보면서 현장에서 직관하던 구경꾼들을 잠시 부러워했습니다. 
 
난생 처음 접했던 불꽃놀이가 생각납니다. 아홉 살 무렵의 여름밤이었지요. 집안의 더위를 피하여 모인 동네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는데 갑자기 폭음과 함께 하늘에서 붉고 푸르고 노란 색의 불꽃이 퍼졌습니다. 당시만 해도 부모 세대는 6.25를 직접 겪은 트라우마가 있었고 우리 역시 학교에서 냉전교육을 받은 터라 난생 처음 접한 폭발음과 불빛으로 전쟁인가 두려워하며 집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밤하늘에 별처럼 쏟아져 내리던 그 색색의 아름다운 빛가루가 마음을 당겨 결국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지요. 알고 보니 동네에 있던 기독교계 대학의 선교사들이 미국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는 행사였더군요. 유치하지만 이후로 불꽃 축제를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설레고 동심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어두운 밤하늘에 아름다운 불꽃이 터지는 찰나의 기쁨은 마치 만화경을 이리저리 움직여 색종이조각들이 만들어내는 예쁜 도형들을 보던 어린 마음처럼 황홀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큰 규모로 불꽃축제를 여는 도시가 서울말고도 더 있습니다. 11월의 부산 광안리 불꽃 축제와 역시 11월 중의 포항 형산강 불꽃 축제가 그것입니다. 배경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검은 밤하늘에 명멸하는 화려한 불꽃이 물 위에 반영된 또 하나의 불꽃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날밤을 특별한 추억으로 각인시킵니다. 몇 년 전 광안리 바닷가의 불꽃 축제를 보려고 인파에 밀려 발이 공중에 떠서 이동하던 나의 경험도 힘들었다기보다 잠깐이지만 다시 못 올 젊음의 분위기를 느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아름다움에 동반된 그림자를 우리는 보지 못합니다. 아니 외면합니다. 불꽃이 터질 때 연소되는 대량의 화약은 대기 중의 초미세먼지를 최대 서른 배 이상 증가시키는 심각한 대기 오염을 부르고 불꽃의 다채롭고 아름다운 색상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중금속들은 1급 발암물질로 공기 속으로 퍼져나갑니다. 불꽃이 발생시키는 먼지와 오염 물질과 탄소알갱이가 만든 심각한 대기오염에서 어린이들의 호흡기를 지키려고 인도에서는 학교가 휴교까지 한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화약이 터지면서 생기는 커다란 폭발음은 생태계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의 생체 리듬을 깨뜨릴 정도의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답니다. 축제 장소 주변에 깃들어 잠든 새들은 순간적인 폭발음에 놀라 한꺼번에 날아오르며 방향을 잃고 주변의 지형지물에 또는 자기네들끼리 충돌해서 떼죽음을 당한 사례가 여러 나라에서 관찰되고 학술적으로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내전을 피해 온 난민들의 캠프가 있던 독일의 어느 지역은 폭죽이 터질 때 나는 폭발음이 전쟁의 트라우마가 있는 난민들에게 공포와 불안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아예 불꽃 판매를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가을밤의 낭만적인 불꽃놀이가 왜 갑자기 먼지와 불안과 대기오염으로 이어지냐고 불만스러워 할 이도 있겠군요.
최근에 세계를 경악하게 한 네팔의 홍수사태로 언론매체들이 다투듯이 지구 온난화의 현실을 경고하는 다양한 자료와 영상들을 쏟아냅니다. 얼음이 녹아 붕괴된 빙하가 덮어버린 스위스의 산간 마을, 오랜 가뭄으로 호수 바닥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고 식수조차 구하기 어려운 아프리카 어느 지역, 뜨거워진 바다가 뿜어낸 과도한 수증기가 다시 무서운 폭우로 쏟아진 일본의 마을들. 인류의 이성에 호소하던 통계자료 대신에 영상과 이미지로 더 강력한 경고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건 우리가 자연에 지고 있는 빚입니다. 갚지도 못하고 해마다 늘리기만 해 온 빚입니다. 불꽃 축제의 화려한 아름다움을 즐기는 동안에도 우리는 미세먼지의 급증, 대기오염, 생태계 교란과 같은 무거운 빚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갚을 수 있는 규모를 넘어버리면 빚은 갚아내기도 어렵지만, 거꾸로 빚덩이가 우리를 압살(壓殺)시킬 위험도 우려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가 자연에 지고 있는 빚의 규모는 변제가 가능한 수준일 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