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뉴스를 접하는 순간, 눈을 의심해야 했다. 다름 아닌 어느 유명 문인이 자신의 책을 베스트셀러로 둔갑시키기 위하여 서점에서 다량 사재기를 했단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문인으로서 참으로 낯이 뜨거웠다. 작가들은 독자들이 구매하는 자신의 저서 수량에 따라 작품성을 평가 받기보다는, 불후의 명작으로 세간에 영원히 회자되길 꿈꾸곤 한다. 아울러 자신이 애써 쓴 글 한 편이 혼탁한 사회의 탁류를 거르고, 사회곳곳에 드리워진 어둠을 환히 밝히는 등불이 되어주기를 소망하기도 한다. 또한 무엇보다 문학을 무슨 악세사리처럼 가슴에 달고 젠체하거나 영달의 매개체로 생각하는 것을 큰 수치로 여기기도 한다. 즉 속물적인 일과 타협하는 일엔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배가 고파도 문인은 빵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영혼을 헐값에 팔지 않는다. 그만큼 선비 기질과 자존심이 강하다는 뜻이다. 필자 또한 그러하다. 오로지 글 쓰는데 만 심취하다보니 지난 30 여 년간 문학상에 눈독을 들이거나 유명세를 얻는 일에는 전혀 무관심 했다. 어쩌면 이런 태도는 요즘 세태에 비춰볼 땐 바람직하다고만 말 할 순 없는가 보다. 일부에선 이런 삶의 태도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이며 주변머리 없는 행동으로 치부하는 시각도 없지 않아서이다.    또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라는 목적의식에 의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바를 쟁취하는 것도 능력이라고까지 추켜세우며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단다. 이런 편법적인 행태 이면엔 ‘오로지 순수문학을 지향하며 묵묵히 글만 쓰는 사람은 무명 신세를 좀체 못 헤어 난다’ 라는 생각이 팽배해서라면 지나칠까. 하지만 이런 처세를 못하는 필자로선 미련스럽게 오롯이 시간만 나면 백지의 여백과 마주해 온 지난 세월이다. 한 편 지난날 한국문단의 수필문학 선구자인 고故 윤재천 수필가께서 쓴 글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생전, 윤재천 수필가는 계간 문예지 《현대수필》 권두언에서 작가는 자신이 쓴 글 한 편이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여 오염된 세상을 정화 시키는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언술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사 수필 창작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글을 읽은 후 십 수 년 전 지방 모 신문에 칼럼을 쓸 때 일이다. 주로 그 당시 사회적 오류나 모순을 꼬집는 글을 주제로 삼았다. 이 때 문인으로서 자신이 쓴 글에 대하여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이는 당시 지방 일간 신문에 투고한 글 내용이 현실화 됐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십 수 년 전 어느 가을날 시외 근교에 있는 산을 등산 할 때 일이다. 등산을 마치고 승차한 시내버스 속에서 안색이 창백한 젊은 여인이 노약자석 앞에 서서 헛구역질을 연신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에 노약자석에 앉았던 할머니께서 일어나더니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눈여겨보니 그녀는 자꾸 헛구역질을 하며 황급히 손으로 입을 가린다. 이것을 본 필자는 가방에서 비닐봉지를 꺼내어 여인 손에 쥐어줬다. 그러자 그녀는 음식물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께서 여인에게, “혹시 임신 아니냐?”라고 조심스레 묻는다. 이 말에 그녀는 임신 3개월이라고 대답했다. 외양으로 봐서는 초기임산부라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우린 배가 불러야 비로소 임산부임을 눈치 챈다. 그러나 그녀는 배커녕 몸매가 매우 날씬 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누구인들 그녀를 임산부로 생각하겠는가. 만약 그 여인 같은 초기 임산부가 시내버스 노약자 석에 앉아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경우 경로사상이 투철한 우리로선 젊은이가 버릇없다는 시각으로 바라보기 일쑤일 것이다. 그러므로 초기 임산부를 위한 좌석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을 글로써 표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배가 안 부른 초기 임산부도 배려해야 한다는 이 글이 칼럼으로 나간 지 얼마 안돼서 일이다. 2009년 서울 시내버스에 임산부 배려석이 도입됐다. 곧 이어서 2013년 12월 서울 시내버스 및 전동차 일부를 임산부 배려 석으로 처음 지정한 후 전국적으로 도입이 되기도 했었다. 필자가 쓴 글 한 편이 국가정책에 반영이 된 것인지, 아님 우연의 일치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러나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라는 속담처럼 필자 글 한 편이 나간 지 얼마 안돼서 임산부를 위한 배려석이 장만 됐으니 경위야 어찌됐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계기로 문인이 쓴 글 한 편이 때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긍지를 지녔다면 필자만의 자아도취는 아닐 것이다. 정녕 이것이 사실이라면 꼭 문인들이 쓴 글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거나 유명세를 떨쳐야만 필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글 한 편이 독자의 가슴을 흔들 수 있다면 그것이 명문(名文) 아니던가. 한국문단엔 시, 수필, 소설, 아동문학 등의 각 장르의 작품을 창작하는 수많은 문인이 있다. 이 들은 자신이 애써 쓴 글 한 편이 누군가가 흘리는 눈물과 땀을 닦아주는 한 장의 손수건이 되기를 소망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오늘도 문인들은 피를 말리는 글 감옥에 스스로 갇히기를 주저 하지 않는다. 이 땅의 이런 문인들을 위하여 진심으로, “화이팅!”을 외친다면 필자의 지나친 언행은 아닐 것이라고 오늘도 서러운 자위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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