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는 특별하게 성기의 크기를 적시한 경우가 있어 눈길을 끈다. 유사는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하면서 사기와는 다른 이적들을 소개하면서 삼국의 통일과 흥망성쇄를 상징적인 이야기로 풀이하고 있다. 신체의 크기를 과장되게 기술한 것 역시 신이적인 인물이라는 점과 강력한 군주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탈해왕의 경우 삼국사기에는 키가 9자로 기술돼있으나 가락국기에는 키는 3자요 머리둘레는 1자로 표기돼 수로왕의 키 9자와 대조를 보이고 있다. 고대사회의 척도로 보면 1자는 통상 24~29센티미터로 거인과 난장이 수준이다. 물론 이같은 대비는 수로왕의 신이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지만 삼국유사에는 탈해가 죽어 화장을 하면서 두개골의 둘레가 3자2치요 몸의 뼈길이가 9자7치로 장사의 골격을 갖춘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또 유사는 신라 26대 진평왕의 키가 11자로 한번의 움직임에 궁궐의 섬돌이 금이 가는 등 육중함을 표현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왕의 성기 크기를 통해 당시의 정치공학적인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이다. 22대 지증왕의 경우 음경의 길이가 1자5치로 배필을 구하기 위해 신하들이 백방으로 수소문하다 인근 모량리에서 박씨를 찿아내 왕비로 삼으니 이가 연제부인이다. 물론 연제부인의 키도 7자5치로 묘사하고 있다. 연제부인은 후처로 지증왕이 왕비를 폐하고 새로 맞이한 부인이라는 점에서 당시의 박씨가계의 위상이 지증의 입지를 굳히는데 일조를 기했다고 할 수 있다. 또 이사부로 하여금 우산국을 정벌하는 등 강력한 군주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음경을 과대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여진다. 더구나 지증왕은 64세의 나이에 왕으로 올라 78세에 죽었다는 점에서 왕의 건장함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반면에 35대 경덕왕은 음경의 길이를 8치로 서술하면서 거대함에도 후사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왕권강화 정책의 실패로 인해 신라의 국운이 쇠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표훈스님은 경덕왕이 아들을 얻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딸이라면 얻을 수 있으나 아들은 불가하다는 상제의 뜻을 전하면서 아들을 얻으면 나라가 위태로워 진다고 경고했으나 후사를 이을 아들을 얻게 된다. 이는 민심이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왕권강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한 것을 의미한다. 결국 8세의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른 혜공왕은 재위 16년 동안 5차례의 반란을 겪는 등 결국 김양상에게 시해되는 비운과 함께 통일신라는 쇠락의 길을 걷게된다. 무릇 국가의 흥망은 성장기와 쇠퇴기로 구분하듯이 경덕왕 재위 24년간은 통일신라 최전성기라 할 수 있으며 물질적 흥망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일연은 왕권강화가 절실했던 부흥기의 22대 지증왕과 통일 이후 성숙기에서 쇠퇴기로 치닫는 35대 경덕왕을 대비하면서 절대왕권의 성격을 표현했다. 어떤 조직이든 성장위주의 시기에는 일치된 단결력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만 정상궤도에 도달하고 나면 분배의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다가 끝내는 분열 또는 몰락의 길을 걷기 마련이다. 창업도 어렵지만 수성의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국가의 흥망성쇠도 이같은 전철을 답습하고 있다. 지증왕때의 권위와 경덕왕때의 권위는 달라야 하며 왕권강화의 정책들도 성장기와 성숙기는 달라야 한다. 성숙기 혹은 하강기에는 민심을 아우러는 포용의 리더십이 오히려 왕권을 강화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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