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7일 저녁, 대릉원 옆의 한옥 문정헌에서 문학토크가 열렸다. 올해 열다섯 번째 시집 『새가 울고 갔다』를 펴낸 여든 넷의 시인이 자신의 시를 낭송하고, 후배 문인들이 이어서 읽었다. 필자는 그 자리를 진행하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저녁 행사는 어디에 기록될까.
문정헌은 2012년 경주에서 열린 제78차 국제PEN대회를 기념해 이듬해 문을 연 공간이다. 경주시가 기존 건물을 고쳐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고, 국제PEN한국본부 회원들이 책을 기증했다. 그 대회에서 세계의 문인들은 디지털 시대의 표현의 자유를 다룬 「디지털 자유 선언」을 채택했다. PEN International은 지금도 이를 2012년 9월 경주에서 채택된 문서로 기록한다. 경주가 세계 문학사의 한 지명을 얻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건물은 철거 대상이다. 2023년 경주시의회 회의록에는 담당 과장이 문정헌과 인근 건물이 문화재보호구역에 있어 머지않아 철거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부분이라고 답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역설적인 것은 2013년의 경주시다. 지금도 문정헌 앞에는 경주시장과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장 공동 명의의 안내판이 서 있고, 거기에는 이 공간이 국제펜대회 개최의 “기념비적인 상징물”로 이용되기를 바란다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정비구역 안이라도 활용 가치가 있는 건물은 살리겠다던 그 행정이, 10년 뒤 같은 공간을 철거 대상으로 다루고 있다.
현장에 다시 가 보았다. 안내판 둘레에는 잡초가 자랐고, 북카페 표지석은 도색이 벗겨져 문장이 잘 읽히지 않았다. 철거가 예정된 공간에는 예산이 들어가지 않는다. 활용도가 낮으니 정리해도 된다는 판단은, 그 방침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행정의 논리도 들어보았다. 형평성이다. 같은 구역에서 이미 보상을 받고 건물을 내준 분들이 있는데 한 곳만 남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업을 집행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무거운 부담일 테고, 가볍게 넘길 말이 아니다.
다만 두 가지는 짚고 싶다. 문정헌을 헐면 이미 떠난 분들에게 무엇이 돌아오는가. 형평은 같은 대우를 요구하는 원리이지 같은 철거를 요구하는 원리가 아니다. 그리고 문정헌은 사유재산이 아니라 시가 사들여 기념시설로 만든 시의 자산이다. 보상의 형평을 따지는 저울에 올라갈 물건이 아니다.
형평성 논란이 생기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본다. 어떤 장소를 남기고 어떤 장소를 정리할지 판단하는 공표된 기준이 경주에 없기 때문이다. 기준 없이 한 곳만 남기면 특혜로 보이지만, 기준에 따라 남기면 아무도 형평을 문제 삼지 않는다. 창경궁을 복원할 때 일제가 세운 건물은 대부분 헐렸으나 1909년에 지은 대온실만은 남았고 2004년 등록문화재가 됐다. 궁궐 복원이라는 더 엄격한 사업에서도 기준에 맞으면 예외는 성립했다.
신라 유적의 정비를 멈추자는 말이 아니다. 왕경 복원의 공익은 그것대로 분명하다. 다만 질문을 바꿔보고 싶다. 역사도시는 어느 한 시기의 모습을 복원해 고정하는 도시인가, 시대마다 새로운 기억이 쌓여가는 도시인가.
기준을 만들 근거도 이미 있다. 2024년 9월 시행된 「근현대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은 생성된 지 50년이 지나지 않은 유산도 장래 가치가 인정되면 ‘예비문화유산’으로 선정해 보호할 수 있게 했다. 서울시는 2013년부터 미래유산을 선정해 2020년까지 488건을 축적하였다. 문화재가 아닌 것을 목록으로 붙잡아 두는 일을, 다른 도시들은 이미 제도로 하고 있다.
경주도 사실 같은 일을 시작했다. 오는 10월 31일, APEC 정상회의 1주년에 맞춰 경주엑스포대공원에 정상회의장 기념관이 문을 연다. 정상들이 마주 앉았던 회의장을 재현하고 준비 과정과 성과를 아카이브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오늘의 사건을 내일의 역사로 남기겠다는 정책이다. 그렇다면 2012년의 경주는 왜 예외여야 하는가.
그 기준은 세 가지로 시작할 수 있다. 국제행사와 도시사의 장소들을 조사한 ‘경주 미래유산 목록’, 공공건축물을 헐거나 크게 바꾸기 전에 그 장소의 의미를 한 번 확인하는 ‘도시기억 사전평가’, 국제행사를 예산 정산과 시설 철거로 끝내지 않는 ‘레거시 평가’다. 어느 것도 큰 돈이 드는 사업이 아니다.
1979년 육부촌에 아시아·태평양의 관광인들이 모였고, 2007년 경주타워가 섰으며, 2012년 세계의 문인들이 왔고, 2025년에는 각국 정상이 다녀갔다. 이 장소들을 하나의 시간축 위에 올려놓을 때가 됐다. 천년고도라는 말에는 이미 지나간 천 년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의 천 년도 함께 들어 있어야 한다. 경주시가 앞으로의 천 년을 내다보는 역사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이미 존재하는 역사를 복원하는 능력과 함께, 오늘의 의미 있는 사건을 미래의 역사로 축적하는 능력이 필요하다.